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도발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무대응이 계속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미·중 관세 합의의 막전막후에 관심이 쏠린다. 3주 전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지하에서 이뤄진 양국 고위 당국자 간 비밀회담이 이번 빅딜의 물꼬를 튼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을 풀기 위한 첫 번째 회담이 3주 전 워싱턴DC IMF 본부 지하에서 시작됐다”며 “이 비밀회담이 미·중 관세 합의의 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1~26일 워싱턴DC에서 IMF와 세계은행 주최로 춘계회의가 열려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집결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란푸안 중국 재정부장(장관)이 IMF 본부 지하에서 따로 만났는데, 이것이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관세전쟁 와중에 처음으로 성사된 양국 고위급 회동이었다.
FT는 “관세전쟁에서 양국 모두 장기전을 치를 준비가 됐다고 주장했지만 휴전 합의는 예상보다 쉽고 빠르게 성사됐다”며 “지금까지 보도된 적 없는 ‘IMF 지하 회담’이 스위스 제네바 합의의 결실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베선트 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양국 대표단은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제네바에서 협상한 끝에 서로에게 부과된 관세를 90일간 115% 포인트씩 내리기로 합의했다.
중국은 제네바 협상에 마약 단속 분야 최고위급 인사인 왕샤오훙 공안부장을 배석시켜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펜타닐 단속 문제에 대응하는 성의를 보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정부는 지난달 말 중국 외무·상무·공안부에 발송한 서한에서 “인민일보 1면에 펜타닐 전구체(원료) 단속 기사를 실으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편집 방향에까지 개입하려 들자 베이징에선 “오만하다”는 반발이 나왔다. 하지만 중국은 이후 트럼프의 발언 수위가 완화되면서 미국 측과 제네바 협상에 나서게 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양보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던 양국이 큰 폭의 관세 인하와 90일간의 휴전에 전격 합의하면서 시장은 환호했고 경기 침체 확률은 낮아졌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기 침체 확률을 45%에서 35%로 낮췄다.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이 올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을 60%에서 45%로 하향 조정하며 “경제는 힘든 한 해를 보내겠지만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이번 90일간의 유예 조치는 양측 모두가 눈앞에 닥친 듯한 경제 붕괴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잠정적 휴전인 데다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는 여전히 남아 있어 세계 경제가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선언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김철오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