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은평구에 있는 시립정신요양시설 ‘은혜로운집’ 지하 1층 강당 무대에 중년의 남성 15명이 올랐다. 어린이 예배 단골 찬양인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이들의 눈은 한곳을 향했다. 단상 바로 앞에서 찬양 율동을 선보이는 구세군 박정주 사관과 은혜로운집 심숙희 사무국장이다. 두 사람을 따라 율동하는 무대 위 남성들의 몸짓은 어설펐지만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강당에 놓인 의자엔 또 다른 중년 남성 50여명이 앉아 찬양과 율동에 맞춰 손뼉을 쳤다.
서울시 위탁운영 기관인 한국구세군이 매주 일요일 오전, 은혜로운집 입소자를 위한 공동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레크리에이션 겸 예배 활동이다. 은혜로운집에서 생활인으로 불리는 입소자는 100여명이다. 이들 대다수가 조현병 환자이면서 동시에 기초생활보장수급자다. 평균 나이는 60대. 지적 장애가 함께 있는 경우도 많다. 심 사무국장은 “조현병 만성 환자로 웃음을 잃은 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가 예배 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나서 트로트를 틀고 체조를 함께하며 생활인들의 기분을 띄우는 이유다. 그는 “누군가에겐 유치하게 보일 수 있지만 큰 소리로 노래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했다.
일상이 무료한 생활인에게 주일 예배는 즐거운 잔치나 마찬가지다. 직원 이름을 맞히거나 무대에 올라와 대표 율동을 한 생활인은 과자나 커피믹스 등 간식을 받았다. 30분가량의 레크리에이션이 끝나자 은혜로운집 원장인 구세군 이문재 사관이 예배를 인도했다. 예배 역시 아동부 예배와 같이 최대한 무겁지 않게 진행됐다. 이 사관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예수 사랑하심을’ 등 흥겨운 찬양을 함께 부르며 “손뼉도 치고 많이 움직여야 건강해진다. 그래야 외부 활동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율동을 독려했다. 이어 ‘열두 정탐꾼’이라는 주제의 영상을 보여준 뒤 그림이 담긴 PPT 화면을 띄운 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이들 중 10여명은 강당 입구에 놓인 헌금함에 예물을 드렸다. 헌금위원이자 이날 대표기도를 맡은 차지훈(가명·61)씨는 헌금 봉투에 ‘예배드림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복된 일이니 정성껏 드리도록 기도합니다’라고 적어냈다. 동전이 담긴 다른 봉투엔 ‘엄마 보고 싶어요’ ‘우리 가족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석진(가명·72)씨는 “예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며 “나도 믿음 좋은 아브라함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헌금은 예배에 참석한 이들에게 나눠줄 간식을 사는 데 쓰인다. 기독교인이 아닌 기관 직원들이 가끔 ‘예배에 오는 생활인들 간식비에 써달라’며 헌금하기도 한다.
생활인 대부분은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무연고자이기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함께 생활하던 이가 숨져서 추모 예식을 드려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변화는 있다. 이 사관은 “이해가 더딜지라도 예배에 오신 분들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큰 감동이 있다”고 했다. 이 사관의 아내인 박 사관도 “봉사하러 오신 한 사관님에게 ‘교회 다니시라’고 전도한 생활인도 있었다. 이들의 마음속에 신앙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다만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봉사자가 늘 부족하다. 이 사관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곳 생활인들은 감정 조절이 어려운 급성기 환자가 아니다. 주로 무기력과 같은 음성 증상을 보인다. 은혜로운집에서 일하는 촉탁의도 “이곳 생활인들은 행동 제한보다 다양한 생활 자극이 필요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은혜로운집에선 미술·웃음 치료나 인지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인의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 여행 등 다양한 활동이 필요한데 여러 명이 한꺼번에 이동하려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이 사관은 “생활인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하며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이 가장 큰 기쁨”이라며 “은혜로운집이 말 그대로 은혜롭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곳이 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글·사진=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