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제3의 길

입력 2025-05-14 03:02

몇 년 전에 어느 교회 목사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수님은 좌도 우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진보요 좌파이다.”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필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깜짝 놀랄 만한 구분이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실제로 사회과학적 개념 규정으로는 전혀 말이 안 되는 논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름 전쯤 우연히 한 유튜브에서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바로 좌파의 전형적인 논리이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예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 좌파의 판에 박은 논리이다”라고 말이다. 더 놀란 것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었다. “진보사상은 좌파사상이고, 좌파사상은 공산주의이다.”

사회과학적으로 본래 보수냐 진보냐는 구분이 그리 어렵지 않다. 보수는 자유를 지향하고 진보는 평등을 지향한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국민에게 자유와 선택을 준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진다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자유와 선택을 인간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보수이다. 그런데 자유의 기반 위에 경제가 발전하면서 심각한 사회적 역기능이 발생하게 되었다. 바로 불평등이다. 자유가 강자의 자유로만 작동하고 약한 자에게는 오히려 기회를 박탈하면서 불평등이 양산되고 고착화된 것이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만이 점점 부유해지고 많은 사람은 가난해지는 문제가 생겼다. 이런 불평등을 없애고 국민이 골고루 잘살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들이 진보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적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다. 시장경제에서도 기업가의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많이 강조하면 보수이다. 이들은 이렇게 해서 성장의 파이를 키우고 그 파이를 나누면 결국 국민이 잘살게 된다고 본다. 반면 국가가 적절히 개입해서 기업이나 소수의 부자가 일방적으로 부를 독차지해서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부가 골고루 분배되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진보이다.

보수의 극단으로 가면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주의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이미 1920년대 경제공황 때 파산했다. 오늘날 모든 자본주의 사회는 국가의 통제를 일정 정도 받기 때문이다. 진보의 극단으로 가면 옛소련 식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론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21세기 시민으로서의 기독교인은 이 양극단이 아닌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 들어가 있다. 100% 순수 보수도 순수 우파도 없고, 100% 순수 진보도 순수 좌파도 이제는 없다는 뜻이다. 좌파가 공산주의자라는 도식이 전혀 맞지 않는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를 놓고 좌냐 우냐를 따진다면 이는 사실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나보다 좌 쪽이면 그는 좌파로 낙인찍고 나보다 우 쪽이면 그를 우파로 낙인찍는다. 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진리와 사실성에서 먼 편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보면 더욱 명료하다. 보수는 자유와 선택을 소중히 여기고 진보는 분배와 평등을 소중히 여긴다 했다. 예수님은 어떠실까. 당연히 그분은 인간 개인의 자유와 선택도 소중히 여기고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일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도 소중히 여기신다. 이런 면에서 예수는 보수이기도 하고 진보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에 예수의 길은 보수의 길만도 아니요 진보의 길만도 아니다. 이것이 제3의 길이 아니면 무엇인가.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