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알고 기억하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하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의 영단어 연습장 얘기다. 한 전 총리는 외부 만찬 뒤에도 집무실로 돌아와 ‘이코노미스트’를 읽을 정도로 외신 읽기가 유일한 취미인데, 모르는 단어를 접하면 꼭 사전을 찾아 철자와 뜻을 적는다 했다. 그렇게 단어를 적은 연습장 종이가 이곳저곳에 쌓여 있다고 한다. 한 전 총리 부인이 “지저분한 종이뭉치를 좀 내다 버리라”고 타박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남다른 학구열을, 또 누군가는 독한 집념을 말했다. 또다른 해석은 모범생 특유의 상황 적응력이다. 한 전 총리의 학창시절부터 기억하는 한 지인은 “하여튼 어려서부터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단어장을 만들어 어딜 가든 꺼내 읽더라”고 했다. 그는 한 전 총리가 출마할 리 없다고 했었다. 실제 출마하자 “오랜 관료답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한 듯하다”고 말했다.
노욕의 말로라는 조롱이 많으나 그가 불려나온 장면이 개인적 의미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정부 사람들은 그의 윤석열정부 총리 시절이 ‘1기’와 ‘2기’로 나뉜다고 했다. 모두 여소야대지만, 정부 초기 21대 국회와 총선 뒤 22대 국회를 대하던 한 전 총리가 달랐다는 말이었다. 한 전 총리는 처음엔 “야당이 반대해도 구두 뒤축 닳도록 찾아가 설득하라”고 독려했다. 노력해 상황을 돌파해야지 남 탓 하면 공직자의 도리가 아니란 말이었다.
그러던 그는 22대 국회부턴 어딘가 한계를 느끼는 기색이었다 한다. 탄핵소추는 계속됐고 그가 재의요구를 건의할 법안은 많아졌다. “큰소리가 나더라도 주장할 건 주장하라. 그래야 국민도 뭐가 맞는지 알 수 있다.” 점잖던 총리가 바뀌자 언론이 먼저 ‘한덕수의 재발견’을 썼다. 그는 야당만큼 강경한 대통령을 대해 왔다. 서랍에 들어갔을 그의 출마선언문에는 ‘총리라서 못한 일을 대통령의 힘으로 해내겠다’는 구절이 있다.
새벽 후보 교체의 촌극을 옹호할 명분은 없다. 국민의힘 당원들의 재선출 파기환송 판결도 최근 대법원의 것만큼 지엄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손가락질하길 넘어 뒤틀린 정치 현실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 친윤의 사주라던 예비후보의 퇴장 뒤 남은 건 왜인지 더욱 극우화된 진영과 후보다. 총리가 먼저 사과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은 끝내 꼿꼿하던 장면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장관을 여론조사에 올리고 대선 후보로 만든 두 가지가 바로 계엄 사과 거부와 단일화 약속이었다. 그 두 가지는 지금 모두 달라져 있다. 어느 쪽이 옳다는 게 아니라, 때에 따라 뒤틀렸단 얘기다.
계엄 못 막은 총리가 무슨 대권이냐고 많이들 냉소했다. 정당한 의문과 질책이다. 그러나 분열에 이른 책임을 소급한다면 옛 야당 대표를 포함해 정치인 누구도 국민 앞에 고개 들긴 어려운 노릇이다. 50년 관료가 범보수 1위를 달린 이유는 그가 예뻐서도 아니고 역선택도 아니고 애초 이름 알린 이들이 외면당한 결과다. 용병 차출이니 뭐니 민심은 족보까진 관심 없고 그런 건 정당이 알아서 할 일이다. 권력 꿈꾼 이들은 ‘대망론’이 나올 때 크고 작게 협력을 말했지, 겸허히 자신부터 돌아보진 않았다.
한 전 총리는 잼버리와 부산엑스포를 수습했다. 격노하지 않았고 하급자에게 경어를 썼다. 그가 간과한 것이 여럿이겠으나 그중 하나는 대선 아래 더욱 큰 당권 다툼이 있고, 목적과 수단이 매 순간 자리를 바꾸는 정치판의 생리일 것이다. 노욕이든 사필귀정이든 이제 개헌을 말하는 대선 후보는 없다.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공부한다는 그는, 돌아가 단어장에 ‘정치’를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