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그 일을 할 때

입력 2025-05-14 00:35

온종일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라는. 이 상투적인 문장은 나날이 막을 더하는 삶의 무대에서 높은 광량으로 나를 비췄다. 한 개인의 인생행로이든, 대한민국의 시대 상황이든, 갈수록 극심해지는 기후변화이든, 오늘에 이른 세상의 모습 그 어디에 대입해봐도 꼭 들어맞았다. 재차 같은 물음이 뇌리에 맴돌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때’를 살고 있는지. 혹시 중요한 ‘그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밀란 쿤데라는 소설 ‘커튼’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의 어느 시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한다’라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삶에 이전과 동일한 조건을 다시 준다 해도 고민과 선택, 기회, 경험이 결코 같을 수 없는 이유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의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때를 안다는 건 기다림과 지금을 판단하는 지혜다. 너무 일찍 심은 씨앗은 얼어붙은 땅 위로 싹을 틔우지 못하듯, 때가 오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엇나가기 마련이다. 때가 지나기 전에 주저하지 않고 행동해야 하는 일도 있다. 지금의 여건이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지만 많은 일이 단 한 번의 때를 가진다.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 결심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도전, 오장육부의 건강과 의지를 따라주는 체력 같은 것들이다. 삶의 무수한 변수로 인해 언제든 가능했던 일이 한순간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고, 나중으로 미루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때’가 영영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처한 현실이 어지러워 적기를 판단할 기준점이 없다 해도 끈질기게 질문을 붙잡아야겠다.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경험을 쌓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인생의 큰 흐름 안에서 때를 알아차리는 정신의 눈을 뜬다면, 유연하고 우직하게 삶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째깍째깍 시간이 흐른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으니 그 일을 해야겠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