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같이 당연한듯 누렸던 감사를 세어보자

입력 2025-05-14 00:31
게티이미지뱅크

“밤 9시18분 영화 음악을 듣고 있다. 빨간 카세트 라디오가 참 예쁘다.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카세트 라디오다. 안 나오면 어쩌나 하고 버스터미널에 갔는데 동생이 아닌 아빠가 와 계셨다. 아빠와 청계천까지 가서 사 가지고 왔다. 온 가족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한 언니는 공중전화로 툭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어 돈을 부쳐달라고 했다. 등록금도 비싼데 서울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공무원 빠듯한 살림에도 부모님은 맏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돈을 빌려서라도 보내셨다. 언니는 고향 집에 있는 카세트 라디오를 동생 편에 보내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서울에 가실 일이 있다더니 언니를 만나 카세트 라디오를 사주고 오셨다고 한다. 갓 스무 살 된 딸의 서울살이가 외롭고 고될까 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잘 견뎌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나보다.

공기처럼 잊고 사는 감사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는 공감 가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땐 연애편지 쓰듯 했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엄마한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한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감사함을 잊고 당연시하는 게 부모의 사랑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받고 화풀이하는 대상도 가족이다. 고슴도치처럼 상처를 안으로 돌돌 말아놓고 잔뜩 웅크려 있다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폭발한다. 만만한 게 부모다. 우리는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매일 숨 쉬는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서 곁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떠나고 나서야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때는 항상 늦는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투정하듯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불만을 털어놓는다. 거친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분노, 응혈을 쏟아낼 존재를 찾는다. 만만한 게 신이다. 은밀한 가운데 속마음을 털어놓을 대나무숲이고 분노와 욕망의 찌꺼기들을 털어내 주는 해우소다. 그러나 간절히 구하는데도 응답받지 못하면 금방 화를 내고 토라진다. 우리는 그렇게 감사함을 잊고 산다. 아니 모른 척 한다.

배우 송혜교는 지난해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록’에 나와 5년간 감사일기를 써 온 사실을 공개했다. 악플에 시달리면서 힘들었던 시절 노희경 작가의 권유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할 일을 적고 잠들기 전 저녁에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었음을 감사하며 10가지씩 감사한 일을 꼽았다. 처음에는 감사한 일이 생각나지 않아 적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햇살이 반짝 비친 것도 감사하고, 예쁜 꽃을 본 것도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 넘쳤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이 차고 넘친다.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 사계절 때를 따라 꽃과 나무를 푸르게 해주시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고맙고 일용할 만나를 주시는 것에도 감사해야 한다.

소확행은 감사에서 시작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별빛에 감사하는 이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의 빛을 주신다”고 했다. 헨리 나우웬은 중증 장애인들과 한집에서 살았던 경험을 책(‘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으로 썼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여전히 연결보다 행위에서 정체성과 자기 가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내가 얼마나 성공 지향적인지를 깨닫게 된다. 직장, 산업, 스포츠, 학문의 세계에서 경쟁할 수 없고 기껏해야 옷을 입고 걷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주된 ‘성취’인 남녀와 사는 것이 내게는 극도로 답답한 일이다. 나는 행하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알지 모르지만,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과 그냥 함께 있는 일을 맡고서는 내가 그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으려면 얼마나 멀었는지를 절감했다.” 욕망의 바벨탑을 쌓으며 세상 기준을 바라보면 불평과 불만투성이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뿐이다. 건강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몸이 불편한 이들을 오히려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삶을 바로잡을 용기’의 저자 존 오트버그 목사는 “감사는 영적 삶과 건강에 필수적”이라며 “복을 세어 보라. 구체적으로 감사하라”고 조언한다. 긍정심리학의 선구자인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심리학 석좌교수인 로버트 에몬스 박사도 저서 ‘감사는 효과가 있다’에서 “비가 내렸다” “옛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같은 구체적인 감사가 ‘감사 피로감’을 예방해 준다고 했다.

해법은 소소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은 ‘삶의 영성’에서 “삶에 고통이 있을지라도 감사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사역이다. 감사할 때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로 갈 수 있다. 때로 한 인간의 고통은 속에 꼭꼭 숨어 있을 때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통이 없어 보이거나 성공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역자, 즉 예수님의 제자는 고통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고통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 속에, 눈물 속에, 연약함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브렌든 버처드가 ‘두려움이 내 삶을 결정하게 하지 마라’에서 제시한 해법도 비슷하다. “감사할 일을 찾기 위해 멀리 볼 필요가 없다. 스스로 모든 것을 창조하고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에고와 페르소나(가면)를 내려놓고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는 자연스럽고 형언하기 어려운 에너지와 마법의 세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활기차고 행복한 삶은 감사의 길에서 시작된다.”

성경 속 감사

우리 마음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것은 감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개인적인 축복을 받을 때뿐만 아니라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친다. 감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고 긍정적인 마음과 평안을 가져다주도록 한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베푸심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시편에는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감사의 찬양이 많이 기록돼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대상 16:34)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헌신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욥과 다니엘, 사도 바울은 자식들과 모든 재산을 다 잃고도, 사자 굴에 던져지거나 감옥에 갇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중심을 이룬다. 바울은 여러 서신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라고 가르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감사로 변화된 삶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신의 내면까지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는 저서 ‘교회 속 반(反) 그리스도인’에서 “우리 마음에 감사가 가득하다면 절대로 섭섭하다는 타령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면 우리 삶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서다. “바울이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파악한 사람은 자신을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만약 내 안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일생 한 번도 주님께 온전히 돌이켜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며 “어쩌면 평생 그리스도 주변을 서성이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지상을 향해 있는 반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했다.

돌에 고무줄을 매어서 돌려보라. 우리가 주님에게서 멀어졌다고 생각해도 고무줄에 매달린 돌멩이처럼 튕겨 나가지 않고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 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