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군인들이 생활관에 머물 때나 불침번 근무 중 합의하에 성적 행위를 했더라도 ‘군기 침해’로 처벌해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군기 확립 필요성이 큰 영내나 근무시간에 일어난 성적 행위까지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허용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인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24일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7~9월 충남의 한 육군 부대에서 동료 군인 B씨와 유사 성행위를 한 혐의로 이듬해 기소됐다. 군검찰은 A씨가 B씨와 막사 내 격리 생활관에서 성적 접촉한 행위, 새벽 불침번 중 B씨와 영내 화장실에서 유사 성행위를 한 행위 두 가지가 추행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1심은 죄가 인정된다고 보고 징역 4개월의 선고유예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2022년 4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같은 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전합 판결은 영외 독신자 숙소 등 사적 공간에서 합의하에 성행위를 한 남성 군인들을 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2심 무죄를 뒤집고 영내에서까지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가 보장될 수는 없다는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대법원은 “생활관은 군율과 상명하복이 요구되는 공간이고, 불침번 근무 중인 군인은 엄연히 군사적 필요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는 상태”라며 “동성 군인 간 자발적 성행위라 해도 군기와 군율의 확립·유지 요청이 큰 공간이나 상황에서 이뤄졌다면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