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판결과 관련해 열리는 국회 청문회에 조희대(사진) 대법원장 등 출석 요구를 받은 법관 전원이 불출석하기로 했다. 판결에 관한 청문회에 법관이 출석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결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12일 “국회 측에 재판에 관한 청문회에 법관이 출석하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법원행정처 사법정보화실장 등 출석 요구를 받은 대법원 소속 법관 16명 전원이 불출석하기로 했다. 이들은 이 같은 입장을 국회에 ‘청문회 출석요구에 대한 의견서’ 형식으로 제출했다.
법원 관계자는 “개별 판결을 두고 ‘재판한 사람 나오라’는 식의 청문회를 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 전원합의체 선고에 관여한 법관들이 청문회에 나가 발언할 경우 향후 파기환송심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상고심 결론을 두고 국회가 다수당 주도로 대법원장 청문회를 여는 것은 전례가 없다. 법원 내부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청문회를 열고 법원을 압박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 고위 법관은 “판사들이 민감한 판결을 내릴 때마다 국회에 불려나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재판부 합의 과정 등은 법원조직법상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정치적 외압이나 여론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고 독립적인 판결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국회 국정감사나 현안질의에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사법행정을 맡은 법관이 출석해 답변한다. 재판과 직접 관련된 내용은 답변을 자제하는 게 관례다.
민주당은 이 후보 전합 선고 과정에서 대법관들이 6만쪽 사건 기록을 다 읽었는지와 관련해 ‘로그 내역’ 등을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부장판사는 “청문회에서 법원에 로그 내역을 공개하라고 압박한다면 그 자체로 합의 과정과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판결에 대한 반대와 법리적 비판은 수용할 수 있지만 이런 식의 압박은 사법부 독립 침해”라고 말했다.
법원 일각에선 전합 판결이 대선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선고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 후보 판결 관련 논란을 오는 26일 임시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대법관 12명 중 10명이 유죄 취지로 합의한 사건을 바로 선고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정치적 고려에 따른 재판 지연으로 논란이 됐을 것이란 반박도 있다. 대법원은 1·2심에서 재판이 장기간 지연됐고 공직선거법 사건은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판결 결과가 불리하다고 국회가 사법부를 청문회로 압박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