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가 국가별 맞춤형 차량을 제작해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 흐름과 불확실성 확대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꺼낸 카드다.
현대차는 최근 중국 전용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일렉시오의 외관을 공개했다. 철저히 중국 시장만을 겨냥해 개발한 차다. 중국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크리스털’ 콘셉트로 외관을 디자인했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숫자 ‘8’을 헤드램프 디자인에 적용하기도 했다. 주요 경영진은 지난해부터 2개월마다 중국에 모여 현지 전략을 재점검했다. 오익균 현대차 중국권역본부장(부사장)은 “중국 신에너지차(NEV) 시장에서는 늘 배우는 도전자라는 심정으로 중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제품을 출시하는 데 방점을 두고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엔 일본에서 소형 전기 SUV 인스터(한국명 캐스퍼 일렉트릭)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 시장용 우핸들 차량을 따로 생산하고 있다. 도로 폭이 좁고 차고지가 대체로 작은 일본 시장의 특징을 감안해 가장 작은 전기차를 투입한 거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12일 “과거 현대차가 일본 시장 공략에 실패한 원인을 ‘큰 차 투입’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본 시장을 면밀히 분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에선 지난 1월 도심형 전기 SUV 크레타 일렉트릭을 출시했다. 현대차그룹이 인도 현지에서 내놓은 첫 전기차다. 이동 거리가 긴 인도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소형 차급임에도 불구하고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를 473㎞까지 늘렸다. 현대모비스는 현지에 투입될 현대차·기아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한 조립공장을 지난 8일 준공했다.
현대차는 크레타 내연기관차를 출시할 때부터 현지화를 위해 철저한 시장조사를 했다고 한다. 대가족이 많다는 특성에 맞게 실내를 넉넉하게 설계했다.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 뒷좌석에도 에어컨을 기본 사양으로 적용했다. 비포장도로가 많기 때문에 지상고를 높여 차체를 보호한 것도 주효했다.
기아도 인도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 1월 현지 맞춤형 SUV 시로스를 내놨다. 소형차 위주로 판매되는 현지 사정을 고려해 전장을 4m 미만으로 제작했다. 아직 인도는 전기차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휘발유와 경유 모델을 우선 투입했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시로스는 고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여러 첨단 사양과 편안한 실내 공간 등을 갖췄다. 인도 현지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는 올 상반기 중에 준중형 전기 세단 EV4를 유럽에 투입하기 위해 해치백 모델을 따로 제작했다. 유럽 소비자가 특히 해치백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내년엔 EV3보다 더 작은 차급의 EV2를 유럽에 내놓을 계획이다. 한국엔 아직 출시 계획이 없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