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등 암호화폐가 실생활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가운데 국내 규제 공백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은행 예금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카드를 발급해주는 해외 암호화폐 업체가 등장했지만 이러한 카드의 사용 내역을 추적할 법적 근거가 없어 자금세탁, 불법 거래 위험이 커진 상황이다.
12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2023년 홍콩에서 설립된 암호화폐 결제 보관 기업 ‘리닷페이(RedotPay)’가 최근 국내 영업을 시작했다. 리닷페이는 ‘머니 서비스 오퍼레이터(SMO)’ 라이선스를 보유한 업체로 이 자격을 통해 환전이나 송금 서비스를 제공한다.
리닷페이의 암호화폐 카드는 주민등록증 등을 활용한 간단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아 회원가입을 하고 모바일(10달러) 또는 실물(100달러) 카드를 발급받으면 된다. 일반 카드로 상품을 결제했을 때 은행 예금에서 돈이 빠져나간다면, 이 카드는 은행 예금의 역할을 ‘테더’나 ‘유에스디코인’ 등 스테이블코인이 담당한다. 비자(VISA)의 결제 망이 구축된 가맹점과 아마존 트립닷컴 에어비앤비 우버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금융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금융 당국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게 돼 있지만 리닷페이는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이 업체는 전자금융법에 의한 전자결제사업자 등이 아닌 비자의 결제망을 통해 유입된 해외카드 성격이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의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 규제 공백을 우회한 이러한 영업 행위가 자금세탁이나 불법 거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영업 행위가 아니어서 당국은 사용 내역을 추적할 수 없다. 또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이 확산되면 통화정책과 지급 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효용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 기반의 블록체인, 암호화폐 기업들은 규제 공백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리닷페이와 같은 해외 기업이 한국 시장을 선점해 국내 소비자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국내 핀테크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승호 쟁글 연구원은 “리닷페이 외에도 싱가포르 기반 크립토닷컴이나 미국 기반의 비트페이 등 글로벌 업체들이 비자·마스터 카드와 연계해 가상자산 카드 사업을 아시아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기업 ‘스크롤 한국’의 제인 리는 “해외 업체들이 국내에 별도 법인을 설립하지 않아도 낮은 수수료와 매력적인 리워드를 제공하면 충분히 국내 수요를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며 “규제 당국은 ‘어디까지 규제하고 누구를 규제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짚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