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력한 수주 후보자로 기대를 모았던 필리핀 바탄 원자력발전소(BNPP) 재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산 원전 수출이 최근 잇따라 발생한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바탄 원전 건설 재개에 대한 한수원의 타당성 조사는 아직 시작하지 못한 단계”라면서 “평가에 필요한 자료를 받으려면 필리핀과 미국 간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620메가와트(MW) 규모의 필리핀 바탄 원전은 1976년 미국 웨스팅하우스 주도로 건설에 착수했다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미완공인 상태로 중단된 상태다. 필리핀 유일한 원전 사업이지만 수십 년간 방치된 이를 되살린 건 2022년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다.
그는 전력난 해소를 위해 ‘바탄 원전 재건’ 카드를 꺼내든 뒤 지난해 10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전 건설 재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경제성과 안전성을 평가해 사업 재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타당성 조사를 한수원이 수행한다는 약속이었다. 약 6개월간 조사를 마치고 사업이 재개될 경우 자연스럽게 한국 측이 유력 사업자로 떠오르게 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조사는 아직 시작되지 못했다. 그곳 부지에 설치된 원전 노형은 웨스팅하우스의 제품으로, 미국 측 승인이 있어야 관련 자료를 공유받아 평가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필리핀 에너지부와 미국 간의 문제여서 일단은 기약 없이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 1월 마무리된 한수원·한국전력공사와 웨스팅하우스 간의 지식재산권 다툼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일부 현지 언론의 추측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한국산 원전 수출 사업은 최근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리스크로 지연되거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상태다. 지난 7일(현지시간) 본계약이 예정됐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은 프랑스전력공사(EDF)의 가처분 신청을 현지 법원이 인용하면서 한동안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폴란드 측이 본계약을 호언장담했던 퐁트누프 원전은 2023년 말 현지 정권이 교체되면서 추진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폴란드 정부는 올해 초 한수원에 ‘원점 재검토’ 의사를 전달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단독 수주만을 노리기보다 처음부터 웨스팅하우스와 손잡거나 동남아·남미 등 개발도상국으로 시야를 넓히는 등 시장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