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봄이 온 지도 이제 꽤 지났습니다. 미국 미시간에 머물면서 마음은 한국 땅에 가 있습니다. 조기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 어떤 물음, 어떤 질문을 갖고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까 꽤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선지자 미가의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에게 무엇이 선한가, 무엇이 좋은가. 야훼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찾는가, 무엇을 요구하는가. 미가의 질문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세계 시민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선지자 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미가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 이스라엘과 유다의 상황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권력과 재력이 있는 지도자는 부패를 일삼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착취당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는 거짓 평안과 부요를 사람들에게 약속했지만 주변의 불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부당하게 기소하고, 부당하게 재판했으며 고아와 과부, 가난한 사람과 외국인은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미가는 말합니다. 일 년 된 살진 송아지로 번제를 드리거나 수많은 숫양이나 기름으로 제사를 지내려고 하지 말라고요. 하나님은 그런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고요.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에게 좋은 것, 곧 공의를 행하고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걸 원한다고요.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것 가운데 첫 번째는 “공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공의(tzedakah)는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입니다. 부당한 기소와 재판을 하는 검찰·사법부나 부당한 보도를 하는 언론을 바로잡는 일, 불평등이 심화하고 청년 실업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시장 논리를 넘어 약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 아마 이런 일이 공의를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어떤 대선 후보가, 어떤 정당이 이런 일을 하기에 적합할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묻지 않는 사람은 남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인애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애(hesed)는 단순한 친절이 아닌 언약적 사랑, 즉 끝까지 신실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인애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이웃에게 동일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적대와 증오를 증폭하기보단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가운데, 이주민과 북한이탈주민 장애인 미혼모와 같은 이웃을 포용하고 환대하는 가운데, 범죄는 단죄하되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 정책 가운데 이런 삶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어떤 후보가 이러한 인애와 자비의 정치, 환대와 약자 우선의 정치를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권력이나 당파 세력에 의존하기보단 자기를 낮춰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 은혜에 절대 의존하는 믿음의 걸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라”고 말합니다. 믿음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하는 겸손한 걸음은 정의와 자비를 지탱해 주는 바탕입니다. 종교적 자만심과 특정 이념의 악마화에 빠진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돌이켜서, 자신을 향해 스스로 “비천하다”(tapeinos, 마 11:29)고 한 예수처럼 고통 많은 이 세상을 온몸으로 품어 안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원하는 공의와 인애, 정의와 자비의 정치가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뿌리를 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가를 통해 준 하나님의 말씀은 정치가 혼란하고 종교가 타락한 시대에 사람이면 누구나 걸어가야 할 삶의 길입니다. 유권자로 투표에 참여해야 할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주께서 이 땅을 새롭게 회복해 주길 간절하게 기도할 뿐 아니라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평안을 빕니다.
(한동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