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오늘은, 지난달 13일 개막한 오사카 엑스포 한국의 날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만 없었다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리며 떠들썩한 행사가 줄을 이었을 터다. 파면으로 주저앉은 윤석열 정권 이후 차기 정부의 대일 전략 재구축이 시급하다.
한일의원연맹 사무총장 재임 중이던 지난해 12월 5일 한·일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기획, 추진했다. 계엄 해제 국회 결의안이 가결된 4일 새벽, 일본 측 발제를 맡은 교수 한 분과 전 중의원 의원 두 분으로부터 국제전화가 빗발쳤다. 난리통에 행사가 가능하겠느냐는 것. 설득 끝에 두 분만 예정대로 참석했고, 세미나는 잘 마무리됐다. 그들의 우려는 따로 있었다. 불법 계엄에 따른 정권교체 가능성, 특히 2023년 3월 윤석열정부가 결행한 징용 피해자 제3자 변제안의 지속성 여부였다. 피해자 지원 단체를 비롯해 이 안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발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가 다시 갈등 국면에 빠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도 컸다.
윤석열정부의 대일 정책은 매우 거칠었다. 국익보다 관계 개선에만 목을 맸고, 국민의 열망보다 일본의 마음을 중시했다.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이나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부족했다. 치밀하기는커녕 후속 관리에 소홀했다. 제3자 변제안 실행에 있어서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에 떠맡겨놓기만 해 정작 재단은 자금이 모자라 후속 대응도 어려운 지경이다. 수습책이 필요하다.
그간 대일 피해자 대책은 정부 보상이 중심이었다. 청구권 자금을 받은 박정희정부는 1975~78년 징용자 일부에게 보상했고, 김영삼정부는 1993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보상, 일본 정부는 사죄’의 틀을 천명했다. 보상과 사죄의 분리 기조는 꾸준히 계승됐다. 특히 노무현정부는 2005년 징용자 재조사와 함께 대대적인 보상을 펼쳤다.
그럼에도 일본의 사죄와 반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일본의 협력 없이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일제강점 이후 벌어진 모든 대일 피해자에 대한 정부보상특별법 제정이 요청된다. 특별법으로 설립될 기금재단에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는 통로를 중장기적으로 구축하고 양국의 정부, 기업, 시민이 재단에 기여,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나라를 빼앗겨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정부가 나중에라도 보상을 꾀하는 건 마땅한 이치다. 가해자 배상도 당연하나 일본은 줄곧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완결됐다’고 고집한다. 그렇지만 2015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 기금으로 10억엔을 따로 낸 것을 보면 우리의 원칙적 대응이 대단히 중요하다. 당장은 정부 보상이 우선되더라도 일본의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은 고수해야 한다.
역대 정부는 초기엔 대일 친화적이다가 말기에 반일 갈등이 점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양국 화해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일본의 무성의·무대응 탓에 불만 수위가 높아지기도 했다. 단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을 이뤄낸 김대중 정권은 예외였다. 우리의 대일 자세는 좀 더 차분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김·오부치 공동선언’의 핵심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 있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고 식민지에서 벗어난 한국의 산업 발전과 민주화 성취를 높이 샀고, 한국은 평화헌법에 입각한 전후 일본의 평화 추구 노력을 평가했다. 서로가 처한 위치와 주장은 달랐어도 동아시아에서의 한·일 협력의 필요성엔 공감했다. ‘함께하되 서로 같지는 않다’는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 정신이 작동했다. 한·일 관계에선 화해보다 화이부동의 자세가 먼저다.
주춤거리는 한·일 관계가 화이부동의 틀 위에서 새롭게 작동하면 좋겠다. 한·일 협력은 한반도를 둘러싼 역내 평화를 담보하고 미·중 대립 격화 시대에 국익을 확보하는 전제조건이다.
조용래 전 한일의원연맹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