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28) 아무 준비 없이 연 카페 ‘들꽃’… 기도로 정면 돌파

입력 2025-05-13 03:05
강영애 목사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자신의 ‘들꽃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 강 목사 제공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일곱 교회를 모두 세운 후 드디어 은퇴할 때가 됐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두려웠다. 지금껏 멈추지 않고 달려온 삶을 이제는 정말 멈춰야 했다. 하지만 은퇴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해두지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사랑하는교회에서 금요 철야를 마치고 마을버스를 타면 서대문구청과 홍제천을 지나 늘 내리는 정류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내리면 2층짜리 낡은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건물 모퉁이에는 복덕방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 가게는 늘 문이 닫혀 있었다.

그곳을 바라볼 때마다 ‘저기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레 기도가 시작됐다. 하나님은 “네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으며, 때마다 네게 숙제를 맡기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기도 끝에 나는 그 공간에 작은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다. 그때가 2007년이다.

카페 이름은 ‘들꽃’이라 지었다. 장미처럼 눈에 띄진 않지만 조용히, 함께 모여 피어날 때 더 깊은 울림을 주는 들꽃의 모습이 내 삶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던 물건들과 전시에 활용할 만한 소품들을 하나씩 가져와 카페 내부를 꾸며 나갔다. 공간을 꾸미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커피였다. 지금껏 원두커피를 직접 내려본 적이 없었다. 커피믹스만 물에 타서 마셔온 내게 바리스타 자격은커녕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었다. 그런 내가 카페부터 덜컥 열었으니, 이보다 더한 낭패도 없었다.

하지만 인생의 막다른 길마다 기도로 돌파해온 내가 아니던가. 나는 서울 서대문구 감신대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배모 전도사를 찾아갔다. 커피 전문가였던 그는 회심 후 감신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회 개척을 준비 중이었다. 늘 남을 돕는 데 익숙했던 내가 이번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드립커피 내리는 법을 하나씩 배워갔다.

들꽃카페에는 여덟 평 정도 되는 홀이 있고, 더 안쪽엔 네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있다. 나는 그 공간에서 먹고 자며 철야 기도를 이어갔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홀 너머 입구 쪽 전면 유리에 거리의 풍경이 비쳐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은 때마다 일거리를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정작 손님은 오지 않았다. 매일 닫혀 있던 이 공간이 예쁜 카페로 바뀌자 궁금해하는 이들만 잠시 들렀다 갔을 뿐이다. 그마저도 발길이 끊기고 나면, 남는 건 쓸쓸한 빈자리뿐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비로소 은퇴가 실감 났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매주 화요일 ‘샬롬 식구 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그들은 동교중앙교회 시절부터 함께해온 오랜 교인들이다.

감사한 것은 혼자 오르던 삼각산에 매주 함께 기도하러 가는 동역자들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기도팀은 매주 목요일 오후 5시쯤 들꽃카페에 모여서 저녁을 먹고 삼각산으로 향했다. 산 아래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 기도처에서 3시간 정도 기도한 뒤 내려왔다. 장맛비가 쏟아진 날도 있었지만 산행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나는 “뼛속까지 물 안 들어간다”고 웃으며 앞장섰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카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