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그림책의 해’를 맞아 열린 포럼에서 보림출판사의 권종택 대표가 발제를 했다. 필자는 한국 그림책의 출발을 1990년대 중반으로 보는데, 권 대표는 산증인이다.
그의 이야기는 1970·80년대 계몽사, 금성출판사, 동서문화사 등이 방문판매로 어린이책 전집을 팔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1976년 출판사를 시작한 권 대표 역시 어린이책 전집을 판매했다. 막상 팔아보니 취학 전 어린이를 둔 부모의 구매 비율이 높았다. 그렇다면 유아를 위한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당시 그는 ‘그림책’을 본 적이 없었다.
1980년대 후반 권 대표는 일본 도쿄의 수입서적 전문서점 마루젠과 어린이책 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를 방문해 그림책을 처음 만났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한국은 아직 베른협약 가입 이전이라 출판사들이 저작권 계약 없이 외서를 출간하던 때다. 그는 에릭 칼, 레오 리오니, 고미 다로, 헬메 하이네 등 지금도 사랑받는 작가들의 고전 그림책을 모아 1989년 ‘위대한 탄생’ 시리즈를 출간했다. 1990년대 한국의 그림책이 태동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후 보림출판사는 국내 창작 그림책 ‘연필과 크레용’에 이어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시리즈 등을 출간하며 대표적인 그림책 출판사로 자리 잡았다.
70대 후반인 권 대표는 놀랍게도 “이 그림책을 출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고 한 마음을 ‘일러스트 갤러리 비읍’에서 잇고 있었다. 직원 없이 혼자 ‘일러스트 갤러리 비읍’을 담당하는 권 대표는 원화를 전시하고 판매하며 그림책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 한다.
그림책은 상업출판에서 가장 예술성이 높은 장르로 ‘손안의 미술관’이라고 부른다. 해외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을 회화처럼 사고파는 시장이 존재한다. 프로벤슨 부부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여인숙 방문’이 칼데콧상을 받자 원화를 사려는 이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해외 전시에서 존 버닝햄의 원화를 샀던 G선생도 기억난다.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의 원화라면 가까이 두고 싶기 마련이다.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니 그림책의 마니아 독자들이 생겨난 지금은 국내에서도 원화 판매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동네책방과 연계해 전시와 판매를 기획한다. 과거 보림출판사는 서울 상수동 근처에서 그림책방 ‘노란우산’을 열었던 적도 있다. 지난해 8월 제주의 ‘고요산책’, 그림책방 ‘벨벳왓’, ‘보배책방’에서, 지난 4월에는 구로 ‘콕콕콕’ 그림책방에서 원화를 전시하고 판매했다. ‘콕콕콕’에서 전시한 김동수 작가의 원화 중 절반이 판매됐다. 책방은 전시와 모객을 책임지는 대신 판매수익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 언제나 독자를 위한 콘텐츠가 필요한 책방에 반가운 협력이다.
‘일러스트 갤러리 비읍’의 플랫폼에 가면 구매 가능한 원화를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김동성 작가가 목탄과 펜으로 그린 ‘엄마 마중’의 한 장면을 발견한 순간 필자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