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아시아 외환시장에서는 한국, 중국, 그리고 대만 통화가 급격한 강세를 보이는 매우 독특한 흐름이 관찰됐다. 지난달 중순 원·달러 환율이 1480원 선에 육박하면서 종가 기준으로 연고점을 형성했는데, 이달 초 시작된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연휴 기간 동안 1360원 선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하락했다. 거의 1년간 나타날 정도의 움직임이 불과 2~3주 내 나타났던 것이다. 무엇이 이런 강한 변화를 이끌어냈던 것일까.
기본적으로 달러 약세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달 중순에도 미국 달러화의 신뢰가 흔들린다는 내러티브가 힘을 얻으면서 달러가 큰 폭 약세를 보였는데, 당시에는 일본 엔화나 유로 같은 선진 통화가 중심에 있었다.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에 달러 비중을 매우 높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이런 국가들이 달러를 매각하고, 대안으로 외환보유고에 담을 수 있는 국제 통화에 대한 수요를 늘리면서 엔화, 유로화, 그리고 금 등이 강세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달러 약세는 선진 통화 중심의 달러 약세와는 달리 원화, 위안화, 대만 달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중국·대만 통화의 급격한 강세 직전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이벤트는 미·중 무역협상 진행 가능성이 고조된 것이다. 최고 245%의 관세를 부과한 이후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은 이 수준의 관세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중국이 협상에 나서면 상당한 수준의 하향 조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쉽사리 협상에 응하지 않았는데, 이달 들어 중국 역시 태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일부 제품 관세 면제를 진행하는가 하면, 미국의 협상 요구에 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중국의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 축소다.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미국으로의 수출을 줄이거나,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재화를 수입해야 한다. 위안화의 절상은 중국의 위안화 표시 제품의 대미 수출가격을 높이고 해외로부터 수입해오는 다른 통화 표시 제품 가격은 낮추게 된다. 가격경쟁력이 낮아진 수출은 줄어들고, 반대로 저렴해진 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수입이 증가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것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위안화 절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는 위안화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통화에 대한 투자 수요 급증으로 나타났다. 자본 계정이 닫혀 있으며, 중국 당국에 의해 일정 수준 관리가 되는 위안화에 비해 대만 달러나 원화는 보다 수월하게 투자할 수 있다. 위안화 절상과 함께 원화와 대만 달러가 초강세를 보인 이유는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기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원화는 본격적인 강세 국면으로 접어들까. 아직 속단은 이르다.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기대는 커졌지만 실제 협상에서 어떤 내용이 오갈지, 그리고 양국 간에 어떤 형태의 마찰이 발생할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급격한 원화 강세 이후 빠른 되돌림을 보이고 있는 원·달러 환율이 이런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향후 원·달러 환율을 전망할 때 고려해야 할 요인이 하나 늘었다. 지난 2~3년은 달러 약세 가능성이 크지 않았기에 높은 레벨에서 원·달러 환율이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흐름을 보였다면, 향후에는 협상의 진행 여부에 따라 급격한 달러 약세, 즉 환율의 빠른 하락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의 관세 협상이 있다. 앞으로 진행되는 협상 진행 경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