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연을 약육강식의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의미죠. 야생에서는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고 생태계도 식물부터 인간까지 약자에서 강자로 먹이사슬의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를 생존경쟁 적자생존 자연선택 등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연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며 자연에 잘 적응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에서는 결국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경쟁은 인간 사회에도 가득합니다. 강대국의 힘 앞에 약소국은 절절맵니다. 우리 사회도 약소국에서 온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차별합니다. 기업도 자본과 기술로 서로 먹고 먹히는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식당과 같은 자영업이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고달프니까 다들 힘을 가지려 고군분투합니다. 돈 권력 학력 외모에서 힘을 가져 어떡하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 하는 거지요. 결국 세상이 1등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극도의 약육강식 사회로 변하고 있어 삶의 고달픔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신자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요. 일부 교회는 세속처럼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듯 보입니다. 교회에서조차 강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여 약한 사람들이 있을 자리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현대과학은 인간도 동물 일부로 보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이런 생존경쟁은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렇게 만드셨을까요.
프랑스 남부에서 가난한 교사로 살던 과학자 파브르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곤충을 평생 연구했습니다. 당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곤충을 연구하는 것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무시와 조롱을 받았어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비천해 보이는 곤충을 관찰하여 그들의 창조 위상을 찾아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4000쪽에 이르는 ‘곤충기’를 통해 약함 속에 들어있는 곤충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세상에 알렸습니다.
무엇보다 약한 생명체들인 곤충이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떤 다른 피조물보다 더 잘 순종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창 1:20, 22) 곤충들의 번식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생명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종류와 개체 수를 가지고 있는 게 곤충이에요.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생태계의 모든 동물은 풍부한 먹잇감을 가질 수 있었죠. 다른 동물들의 먹이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곤충들의 희생 최종 혜택은 우리 인간이 누립니다. 이렇게 곤충들은 해충으로 몰려 몰살을 당하면서도 떼를 이루고 번성하라는 창조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한 생명이 어떻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을까요. 떼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곤충은 무리를 지어 살아갑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지요. 개미나 벌 같은 종들은 조직적인 사회를 이루어 살아갑니다. 꼬마꽃벌은 긴 땅굴 속에 각자의 집을 지어 도시를 이루어 삽니다.
어떤 곤충들은 서로 공존하기 위해 협력해요. 곤충들의 협력은 파브르가 곤충학에 기여한 발견 중 하나입니다. 파리의 어떤 종류는 벌의 집과 애벌레에 있는 작은 생물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아요. 그로 인해 벌의 집은 깨끗하게 청소되고 애벌레는 건강한 몸을 유지합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약한 생명끼리 서로 협력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또 많은 곤충은 아주 비천하고 궂은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연의 청소부로서 오물과 사체를 깨끗이 치워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을 수행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싫어하는 파리나 송장벌레 같은 곤충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오물과 사체를 이용해 생존하고 번성합니다. 우리가 깨끗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알고 보면 이들이 자연에서 발생한 오물과 사체를 분해해 준 덕택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활동 덕택에 분해된 물질이 다시 다른 생명체의 몸을 이루는 데 재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분해된 영양분은 식물이나 나무의 영양분으로 쓰이고, 그것으로 자라난 식물은 다시 동물이나 인간의 먹거리가 되고 하는 식이죠. 곤충은 이렇게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이 하나도 낭비 없이 재활용되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곤충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이런저런 본성에 따라 생존하고 번성해요. 하나님은 곤충에게 번성하라 명령하신 동시에 그들이 번성할 수 있도록 친히 돌보아 주십니다. 약육강식의 자연 속 약한 곤충의 삶을 보면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보여줍니다.
부활절을 지나왔습니다. 원래 신분이 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가장 약하고 비천하게 세상에 오신 분은 그리스도십니다. 약함으로 오셔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약하고 비천한 곤충의 희생 위에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듯 약하게 오신 우리 주님의 희생 위에 우리가 존재하는 거죠. 기독교는 적자생존이나 자연선택을 주장하는 현대과학을 인간을 동물과 같이 취급한다면서 비판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도 실제로는 힘과 강함을 추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세상이 추구하는 힘이 아닌 약함을 통해 전파되어 왔어요. 교회가 약함의 아름다움을 실천으로 보여준다면 좋겠습니다. 작은 벌레에게서 지혜를 얻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