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이 심화하는 저출산과 커지는 불확실성에 대응할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세수 확충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전통적 세금’인 관세를 다시 전면에 내세운 미국과는 달리 횡재세(windfall tax), 글로벌 최저한세 등 새로운 세목을 신설해 세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2020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세는 단연 횡재세다. 횡재세란 고유가·고금리 등 외부 요인에 힘입어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수입을 올린 에너지·금융 분야 기업에 보통의 소득세나 법인세와 별도로 적용하는 세금을 뜻한다. 이들이 정상적인 사업 성과가 아닌 일반 대중의 희생을 통해 초과 이윤을 거뒀으니 다시 거둬들여 재분배해야 한다는 취지다.
유럽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횡재세를 도입한 건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다. 개전 이후 국제 유가는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올랐다. 2021년 12월 배럴당 60달러대였던 브렌트유 가격이 전쟁 발발 2주 만에 130달러를 돌파했다.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지자 금리도 덩달아 뛰었다. 2022년 초 0%였던 유럽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이듬해 9월 4.50%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업계와 금융권이 호황을 누리자 유럽에서는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영국이 먼저 행동에 나섰다. 2022년 5월부터 북해 석유·가스 기업의 초과 이익에 25%의 횡재세를 적용했다. 이듬해에는 해당 분야의 횡재세율을 35%로 높이고, 전력 기업에도 45%의 횡재세를 추가 적용했다.
그 결과 영국 조세 당국은 2022~2023 회계연도에만 횡재세로 26억 파운드(약 4조8000억원)를 걷었다. 이 시기 국내 한 에너지 기업도 횡재세 ‘유탄’을 맞았다. 2023년과 이듬해 영국 사업에서 큰 영업 이익을 내고도 ‘횡재세 변수’로 수천억원 규모의 세금을 물어야 했다.
같은 해 유럽연합(EU)도 횡재세 도입을 본격화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18~2021년 평균보다 20% 이상 이익을 얻은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이익 초과분에 대해 최소 33%의 세율을 적용하는 ‘연대부담금’ 도입을 의결했다. 이후 2022년 EU 소속 10개국은 횡재세로만 68억5000만 유로(약 10조8000억원)를 걷었다. 제도가 자리를 잡은 이듬해에는 25개국, 250억 유로로 그 규모가 확대됐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는 그 대상을 은행 등으로까지 넓혔다.
반발은 거셌다. 영국해양에너지협회(OEUK)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북해산 석유 가스에 대한 횡재세 도입으로 업계 투자가 80%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에너지 분야 횡재세 도입이 ‘이중과세’에 해당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2023년 당시의 고금리·고유가 국면이 상당 부분 해소된 현재는 EU 차원의 연대부담금 적용도 종료됐다.
다만 개별 국가 차원에서의 횡재세는 여전히 유효한 카드다. 영국은 지난해 횡재세 종료 시점을 2030년으로 연장하고 세율도 높였다. 스페인은 은행권에 대한 횡재세 적용을 2027년까지 연장했다. 헝가리도 범위·세율을 일부 축소하는 선에서 횡재세를 유지키로 했다. 횡재세 제도를 폐지한 국가들도 향후 고금리·고유가 등 2022년과 유사한 여건이 마련되면 다시 같은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
‘세수 신시장’ 개척에 대한 유럽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다국적기업이 최소 15%의 실효세율을 적용받도록 해 조세 회피를 차단하는 ‘글로벌 최저한세’를 도입했다. 지난해 도입된 최저한세는 올해 소득산입보완규칙 시행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 징수한다. EU로 수출하는 기업에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역시 내년 도입된다.
다만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하고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으로 유럽식 세수 창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으로 기존 OECD 중심의 디지털세 필라 1·2 논의 결과를 모두 부정하고 국익에 반하는 외국의 어떤 조세 관련 조치에 대해서도 관세·조세 등 가용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선포했다.
유럽식 세수 확대 논의는 한국에서도 논의된 주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과거 횡재세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후보는 2023년 “에너지 기업들에서 횡재세를 걷어 국민에게 약 7조2000억원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금융사가 최근 5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이자수익을 벌어들이면 초과 이익의 40% 이내로 ‘상생금융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은행권 횡재세’ 신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다만 유럽에서 다수 국가가 횡재세를 철회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대선에서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 후보가) 정책적으로도 과거보다 ‘우클릭’한 점을 생각하면 횡재세 개념이 (이번 대선에서)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세수를 확충하고 친환경적 에너지 세제를 도입하는 차원에서 CBAM을 참고한 교통에너지환경세 개편 논의 정도는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고 12일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