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사법·행정 모두 통째
흔들려… 블랙코미디 현실
바닥부터 다져 바로잡아야
흔들려… 블랙코미디 현실
바닥부터 다져 바로잡아야
지금 한국 상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입법·사법·행정 삼권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고 하위 개념인 법치주의마저 위태롭다. 딛고 있는 바닥이 출렁이는 상황이니 국민들이 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다. 각종 문제들은 경제·사회적 비용을 동반하며 가뜩이나 성장 동력이 꺼져가는 한국 사회를 더욱 갉아먹고 있다.
일단 행정부인 정부부터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발단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기습 발표한 비상계엄이었다. 이후 탄핵 정국이 펼쳐졌고 대통령 궐위 상태인 정부는 총리마저 탄핵소추되며 수개월을 공중에 붕 떠다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포문을 연 통상 마찰에 최소한의 대응을 해낸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다.
이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복귀한 한덕수 총리는 뜬금없이 대권에 도전한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출마 의지를 접고 행정부를 떠받쳤던 황교안 전 총리를 비롯한 역대 총리와는 달리 행정부를 내팽개쳤다. 그나마 탄핵 정국 속에서도 무안 사태를 주도적으로 수습하며 행정부에 대한 신뢰를 지탱했던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무사하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탄핵 협박을 하던 더불어민주당의 ‘괴롭힘’이 원인이다. 민주당은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정에 없던 부총리 탄핵 안건을 갑작스레 단독 상정했고 최 부총리는 사표를 냈다. 경제 수장이 사표를 내는 탓에 공석인 경우는 정부 최초 사례라고 한다.
입법부인 정치권은 더하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선거법 위반 혐의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며 ‘사법 리스크’를 떨쳐내지 못했다.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상황은 더 가관이다. 경선을 거쳐 선출한 김문수 후보를 하룻밤 사이 내치려다가 당원들의 반발로 무산되는 상황이 불과 이틀 사이 벌어졌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경선에 나섰던 후보자들까지 비판에 가세하며 곳곳에서 ‘사분오열’ 움직임이 감지된다.
삼권의 한 축이자 법치주의를 지탱해야 할 사법부마저도 난장판이라는 용어가 어울린다.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이 공정성 시비에 휘말려 있다. 수사·기소하는 검찰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일만 한다 해도 법원이라는 자정 작용이 존재해 다행이라 생각하는 믿음에 균열을 만들었다. 대법원은 민주당 비판에 반박 못할 만한 명확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 채 국민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며 정치권 행태도 함께 비판해 ‘명문’으로 칭송받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문과 비교된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삼권을 지닌 모두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중에서도 입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현재의 정치 행태가 ‘의석수’를 무기 삼아 삼권분립 원칙을 파괴하고 있는 탓이다. 행정부를 수족처럼 부리고 맘에 들지 않으면 탄핵한다고 협박을 일삼은 일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법부에 대해서도 마음에 드는 판결만 존중하는 자세가 읽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법부를 ‘악마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상황까지 온 데는 디지털이 왜곡한 사회 변화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SNS나 유튜브는 믿고 싶고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행태를 부추긴다. 이렇게 양성된 ‘확증편향’은 정치인들의 등을 떠밀어댄다. 영화 ‘돈 룩 업’에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고 해도 안 믿는 사람들을 그린 블랙코미디와 현실은 지나치게 비슷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난장판을 접고 삼권분립을 비롯한 밑바닥부터 다져야 한다. 삼권분립을 정립한 몽테스키외는 ‘동일한 인간이나 단체가 세 가지 권력(삼권)을 행사한다면 모두 망친다’고 했다. 차기 정부가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과거로부터의 준엄한 제언이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