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지난달 출간 100주년을 맞은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의 화자가 아버지로부터 들은 충고를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소설은 명망 있는 집안 출신으로 예일대를 졸업한 닉 캐러웨이의 시점으로 쓰여 있다. 가난으로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낸 후 어둠의 경로로 막대한 부를 쌓아 다시 연인 앞에 나타난 제이 개츠비의 비극을 닉의 눈으로 바라본다. 20세기 초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영하가 직접 작품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10여년 전부터 경제학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마일스 코락 뉴욕시립대 교수가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세대 간 이동 가능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것을 앨런 크루거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위대한 개츠비 곡선’으로 이름 붙여 유명해진 때문이다. 해당 곡선은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세대 간 이동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표로 사용돼 왔다. 지난 3월 7차 개정판이 나온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함께 쓴 ‘경제학 원론’에서도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 새로 포함됐다.
며칠 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자녀가 부모를 뛰어넘을 수 없는 세계, 격차를 진심으로 마주보라’는 기사에서 코락 교수가 분석한 이 곡선의 최신 버전을 소개했다. 코락 교수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일본은 주요국 중 미국·멕시코, 노르웨이·덴마크 등의 사이에 놓여 있다. 한국의 위치는 일본보다 좀 더 오른쪽 위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래프에서 오른쪽 위로 갈수록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부의 대물림이 심하다는 의미다.
이를 보면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세대 간 이동 가능성이 악화된 것처럼 비칠 수 있고, 통념 역시 그에 부합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지난해 12월 나온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2023년 한국의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는 0.323으로 2012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후 가장 낮았다. 세대 간 이동 가능성과 관련해 2020년 이후 나온 사회학자들의 연구에선 부모와 자녀 세대 간 교육 및 사회경제적 지위의 이동 가능성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잇따르기도 했다. 물론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까지 포함한 불평등 정도와 비교적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연구들을 살펴봐야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앞으로의 불평등 정도와 세대 간 이동 가능성이다. 그런 점에서 닛케이가 함께 언급한 논문에 눈길이 간다. 주요 10개국에서 자녀가 부모의 소득을 넘길 확률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데, 미국과 호주를 제외한 8개국에서 그 주 원인이 성장률 둔화였다고 해당 논문은 분석한다.
이는 한국의 올해 및 중장기 성장 가능성을 계속 낮춰 잡으며 갱신하는 국내외 연구기관, 시장 참가자들의 전망과 겹쳐진다. 일례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번 주 올해 수정 경제전망 발표를 앞두고 지난주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2040년까지 0.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주요 기관의 수치와 분석이 아니더라도 부동산에 쏠림이 심한 돈의 흐름, 의대 광풍으로 대표되는 이공계 이탈이라는 현실에서의 경험도 한국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긍정하기 어렵게 한다. 소득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이동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정책의 역량을 더 쏟아야 하는 이유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