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지금은 이재명’.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공식 슬로건이다. 이 문구들은 정치권과는 거리가 먼 광고기획사 소속 마케터 A씨의 ‘작품’으로 파악됐다. A씨가 정치인과 작업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기존 정치 문법이 아닌 ‘마케팅’의 관점에서 여러 대안을 제시했고, 이 후보는 이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고 한다.
‘K-이니셔티브’라는 국가 비전과 ‘잘사니즘’으로 대표되는 성장 슬로건 역시 그의 아이디어였다. 정치 슬로건 치고는 다소 낯설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 후보는 A씨의 제안을 흔쾌히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정치 문법은 마케팅과는 거리가 너무 먼 것이었다”며 “‘기존 지지 세력을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가’라는 고민만 있었다. 마케팅으로 치면 원래 물건을 팔았던 손님에게 한 번 더 파는 전략만 고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마케팅은 내 물건을 사지 않았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 뒤 그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개선점과 아이디어를 (이 후보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마케팅적 관점의 핵심은 ‘새로운 어젠다 설정’과 ‘표출되지 않은 진짜 욕망’이라고 한다. A씨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그러면 지금까지는 가짜였다는 말이냐’는 반박이 나온다”며 “상대가 반박을 하면서 우리 판으로 들어오면 결국엔 우리가 이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표출되지 않은 욕망을 건드리는 게 중요하다”며 “유권자들은 정말로 우리가 주도하는 세상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인식과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K-이니셔티브’와 ‘잘사니즘’을 반대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적극적인 중도보수 공략 필요성도 조언했다. 그는 “민주당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의힘의 확장성을 막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보수의 영역을 선점하는 것이 필요했다. 국민의힘 측이 반발할수록 더 오른쪽으로 몰리면서 결국 ‘극우’로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구도를 만들기 위해 조갑제 대표 등 보수 진영 인사들과 더 많이 소통하시라는 말씀을 드렸다”고 덧붙였다.
핵심 ‘PI’(President Identity·최고경영자 이미지)를 고민하는 이 후보에게 ‘목계지덕(木鷄之德)’과 ‘태연자약(泰然自若)’도 제안했다. 두 사자성어는 공통적으로 마음의 평정과 여유를 핵심으로 한다. 이 후보가 가진 선명한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카리스마는 유지하되 작은 일엔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리더십을 강조하자는 취지다. ‘지금은 이재명’ 슬로건도 이런 측면에서 채택됐다. 전 세계적으로 강한 리더십을 중심으로 한 자국 중심주의가 부각하는 상황에서 이 후보도 강하고 단호한 지도자 이미지를 내세우려 했다는 설명이다.
A씨는 이번 일이 자신이 다니는 광고기획사와는 상관없는 개인적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 주변의 한 인사와 개인적 인연을 계기로 몇 차례 자문에 응하다 일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명이 공개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이 후보 측과 몇 차례 회의를 진행하며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