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도 멈춤 없는 사랑의 밥퍼, 영혼 보듬는 꿈퍼를 꿈꾸다

입력 2025-05-13 03:07
어르신들이 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주최한 어버이날 효도잔치에서 식사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어버이날이던 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에 어르신 700여명이 모였다. 다일공동체(이사장 최일도 목사)가 32년째 진행하고 있는 효도잔치를 찾은 이들이다. 최일도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달아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장기 자랑도 관람한 이들은 밥퍼가 준비한 음식도 먹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생필품과 밀키트 등이 담긴 선물도 받았다.

매일 밥퍼에서 식사를 한다는 안옥순(91) 어르신은 “밥퍼 밥은 늘 맛있지만 오늘은 더 맛있다”면서 “혼자 살면서 밥을 해 먹기가 힘든데 밥퍼 덕에 매 끼니를 챙겨 먹고 있다”며 감사인사를 했다.

밥퍼 효도잔치는 다일공동체의 초창기부터 시작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이날 최 목사는 “무의탁 어르신을 섬기면서 처음엔 이분들이 자식이 없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식이 있는데도 찾아오지 않는 거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추석엔 오겠지, 설날엔 오겠지’ 하시며 늘 자식을 기다리다가 어버이날에도 혼자 계시는 어르신들을 본 뒤 밥퍼가 어르신들의 자식이 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밥퍼의 가정의 달 섬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는 30일에는 경기도 가평 설곡산다일연수원에서 효도 관광이 진행된다. 어르신들은 황톳길을 산책하고 연수원에서 재배한 꽃으로 만든 비빔밥을 나누며 봄의 정취를 만끽할 예정이다. 오는 길에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마련한 열병식에도 참여한다.

최 목사는 “얼마 전 육군사관학교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르신들을 생도 부모님처럼 모시고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며 “무의탁 어르신들을 도우려는 사랑의 손길이 끊이지 않아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K-나눔 성지’ 외국인 봉사자 늘어

지난해 10월 밥퍼를 찾은 미국 텍사스주립대 학생들의 봉사 모습. 다일공동체 제공

최근 다일공동체는 동대문구와 힘겨운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동대문구는 3년 전 다일공동체가 건물을 무단 증축했다며 건물 철거 시정 명령을 내린 뒤 다일공동체가 이에 따르지 않자 이행강제금 2억8328만4500원을 부과했다.

다일공동체는 “건물 증축은 서울시 공무원과 구두 합의를 거쳐 전 동대문구청장이 지시해 진행된 것”이라고 호소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승소했으나 동대문구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며 오는 15일 공판이 예정돼 있다.

소송 중에도 다일공동체는 섬김 사역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점심에만 하던 배식을 아침까지 늘리면서 어르신들이 누룽지와 떡으로 따뜻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다일공동체에는 외국인들까지 봉사자로 방문해 배식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50여개국 출신 외국인들이 다일공동체를 찾았다.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은 물론이고 관광을 왔다가 일부러 다일공동체에 들러 봉사를 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러시아 국적 피아니스트 스타니(44)씨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며 정치적 난민이 될 위기에 처했다. 현재 한국교회의 도움을 받고 지내는 그는 매달 한 차례 밥퍼에 봉사를 하러 온다. 홍콩의 한 학교 학생 38명도 교사의 인솔 아래 다일공동체를 찾았다. 최 목사는 “학생들이 한국 여행을 왔다가 밥퍼에서 봉사를 하러 종종 온다”며 “다일공동체가 한국의 나눔과 섬김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K-나눔’의 성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어르신 편의 위해 소송 마무리 기대

다일공동체는 동대문구와의 소송이 마무리된 뒤 증축이 끝나며 어르신들이 좀 더 편하게 밥퍼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송 중 공사를 하지 못해 현재 밥퍼 3층은 창문도 달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날이 궂으면 1층까지 비가 새기도 한다. 계획대로였다면 승강기와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어르신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화장실은 월 7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임시로 마련했는데 계단이 있어 휠체어 장애인이나 고령의 어르신은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김주영 다일공동체 팀장은 “한 어르신이 밥퍼에 와서 물도 안 먹고 국물도 안 드시길래 여쭤봤더니 화장실 가기 힘들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시길래 마음이 아팠다”며 “소송이 잘 끝나 하루빨리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지난해 “다일공동체가 증축할 때 동대문구의 잘못된 전제 하의 지도와 안내가 있었다”며 “기존 시설이 건축물관리 대장 등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관계 법령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동대문구와 면밀하게 관리하지 못한 서울시의 전적인 잘못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또 “다일공동체는 비영리적 목적으로 공공부문에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복지사업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신규 시설을 존치시키는 것은 공익에 이바지하는 요소도 있다”고 밝혔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