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K배터리’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고 자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호령할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10대 중 3~4대는 한국 기업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반도체·자동차 등을 이을 한국 산업의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꼽혔던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에 기술 주도권을 빼앗긴 지 오래고, 일본엔 거센 추격을 당하고 있는 처지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도 배터리 사용량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가운데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빅3(CATL, BYD, CALB)의 올해 1분기 시장 점유율은 58.8%로 전년 동기 대비 2.5%포인트 상승했다. CATL이 38.3%를 기록했고, BYD는 16.7%로 집계됐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시장 점유율은 18.7%로 전년 동기 대비 4.6% 포인트 하락했다. 최고치였던 2020년(34.7%)에 비하면 5년 새 무려 16.0% 포인트 감소했다.
중국 배터리 ‘굴기’(우뚝 일어섬)는 연구·개발(R&D)비만 봐도 알 수 있다. CATL은 1분기 보고서를 통해 연구개발비로 48억1400만 위안(약 9484억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1년으로 환산하면 3조7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기술 개발에 쓴 것이다. BYD는 지난해 R&D에 542억 위안(약 10조원)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세계 3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조882억원을 R&D에 투입했고, 삼성SDI는 1조2976억원, SK온은 277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3사의 투자액을 합쳐도 2조6628억원으로 BYD의 27%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의 초격차 기술력 유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셈이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시장은 중국으로 넘어갔고, 기회의 문은 좁아지고 있다. 시간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닌 것이다. 뼈를 깎는 혁신이 없으면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