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 83.5세 시대에 살며
사회적 은퇴 65세는 적절한가
‘70세까지 2년에 1세씩 상향’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직결돼
노년기 재정의, 미래 재설계는
세대 간 사회계약의 초석 돼야
사회적 은퇴 65세는 적절한가
‘70세까지 2년에 1세씩 상향’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직결돼
노년기 재정의, 미래 재설계는
세대 간 사회계약의 초석 돼야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인구학적 전환의 중심에 서 있다. 2024년 말 한국은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고령화의 가속페달은 더욱 세차게 밟히고 있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사는 시대지만 여전히 노인의 기준은 1980년대 생애주기 통계에 머물러 있는 ‘65세’에 고정돼 있다.
연령은 단순한 생물학적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규범이자 은퇴·연금·복지 제도의 경계선을 나누는 제도화된 구조다. 문제는 생물학적 수명과 건강 수준이 크게 향상된 지금 제도화된 연령 기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개인의 삶과 제도 간 미스매치가 심화되고, 자원의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하는 제도 지체(structural lag)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의 65세는 과거 55세보다 건강하고, 역량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노인이라며 그들을 구조적으로 비활성화시키고 있다. 지나치게 일찍 노인으로 규정하고 정년과 연금 수급 시점을 고정하는 것은 사회적 자립성과 활력을 제약하는 구조가 된다. 기대수명 83.5세, 건강기대수명 73세 시대에 65세가 사회적 은퇴의 경계선으로 적절한가. 이 질문이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던져져야 한다.
복지국가의 존립 기반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년이라는 생애 단계의 구조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울트라 고령사회로 향하는 한국에선 노인 기준 연령과 사회적 역할 구조를 현실에 맞게 재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 노년기를 어떻게 새롭게 재구성할 것인가가 우리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핵심 과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최근 필자를 포함한 민간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까지, 2년마다 1세씩 단계적으로 상향하자”는 제안을 공식화했다. 경제활동 연령, 연금 가입 및 수급 개시 연령, 경로우대 적용 연령 등의 연동 정비도 함께 요청했다. 다만 삶의 질을 해치지 않고 소득 공백 없이 취약층을 보호할 수 있도록 고령자 노동시장 개선 및 연계 보완 조치가 전제돼야 함을 강조했다.
적절한 시점에 계속고용 제도에 대한 정책 제안도 나왔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법정 정년 60세는 유지하되 희망자에 한해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자고 했다. 이는 단순히 퇴직 시점을 늦추라는 명령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 건강 상태에 따른 일자리 매칭, 재교육·전직 지원 등을 통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회를 넓히자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내각부도 ‘70세까지 누구나 활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기치 아래 노년의 활동성을 끌어올리는 사회 시스템을 설계 중이다. 이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국가의 총행복도를 높이는 전략적 투자로 인식된다.
다만 연령 기준은 획일적인 선이어선 안 된다. 건강, 소득, 가족 상황 등 개인별 조건을 반영해 조기 퇴직 선택권과 장기근속 인센티브를 병행해야 한다. 연금과 복지 수급 역시 생물학적 연령이 아니라 실질적 상태와 욕구에 따라 조정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령 상향이 가능한 이에게는 사회 참여 기회를 넓히고, 어려운 이에겐 더 빠르게 보호를 제공하는 2중 채널 설계가 요구된다.
청년세대 입장에서도 이는 중요하다. 고령자 전체를 일률적으로 ‘의존 집단’으로 보고 부담으로 여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노년층의 역량과 생산성을 사회가 활용할 수 있다면 세대 간 연대와 지속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후기고령층에게는 진짜 필요한 지원을 더 깊고 섬세하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생애 말기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결국 이번 노인 연령 상향 논의는 단순한 제도 수정이 아니라 노년기를 재정의하고 사회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전기노년층에게는 성장과 활력의 무대를, 청년세대에게는 지속 가능한 복지에 대한 신뢰를, 장년세대에게는 준비된 전환의 시간을, 후기고령층에게는 존엄한 보장을 제공하는 세대 간 새로운 사회 계약의 초석이 돼야 한다.
이번 노인 연령 상향 논의는 단순한 기준 변경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이 드는 삶을 존중하고, 확장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근본적 성찰이어야 한다. 이제는 지체된 제도를 바로잡되 삶의 질은 높이고, 가능성은 확장하며, 보호는 더 깊어지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
사회복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