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들판에서 잠자기

입력 2025-05-12 00:34

캠핑을 다녀왔다. 캠핑을 즐긴다고 하면 사람들은 캠프파이어도 하느냐고 묻곤 한다. 장작에 불을 붙이고 둘러앉아 고구마나 감자, 마시멜로를 구워 먹느냐고 묻는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어스름이나 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모닥불은 주변 온도와 습도 모두를 적당하게 바꿔준다. 불의 춤추는 모습과 장작 타는 소리는 시각과 청각으로 온기를 보탠다. 감각이 사용되는 종류의 온기인 셈이다.

짐을 차에 가득 싣고 달려가 텐트를 치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은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오는 노동이지만 자그마한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새삼스레 알게 된다. 인간은 이 정도의 사물로도 숙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들고 훨씬 일찍 일어난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저녁을 준비해 천천히 먹고 나서 약간의 담소를 나누다 잠이 들고, 텐트 안으로 여명이 깃들 때 눈을 뜬다. 혹은 옆 사이트의 인기척 때문에 눈을 뜬다. 지구의 자전에 맞춰서 취침과 기상을 하게 될 때 인간의 육체가 틀림없는 자연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긍정하게 된다.

이번 캠핑에서는 연일 비가 내렸다. 텐트에 닿는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 울어대는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새벽이면 목청껏 울어대는 닭의 노래를 듣다가 그 소음들에 귀를 내어주는 시간이 좋아서 휴대폰의 녹음 앱을 켜고 녹음을 해보았다. 텐트의 지퍼를 열자 저 멀리 낮게 깔린 구름 속에서 일고여덟 겹의 능선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눈뜨자마자 이런 풍경을 보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들판에서 잠을 잤구나 했다. 우비를 입은 캠퍼들이 하나씩 설거지를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고 세수를 하러 가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칫솔과 양치컵을 양손에 들고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고양이들이 처마 밑에서 옹기종기 서로 등을 기대며 웅크린 채 졸고 있었다. 그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지나갔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