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잠재성장률

입력 2025-05-10 00:40

성장 지상주의 경제에서 벗어나자는 ‘탈성장론’은 이미 많이 성장한 유럽에서 대안적 경제모델로 등장했다. 세르주 라투슈(‘탈성장사회’), 팀 잭슨(‘성장 없는 번영’), 제이슨 히켈(‘적을수록 풍요롭다’) 등이 주목받는 저서와 함께 ‘덜 쓰면서 더 잘 살자’는 구호로 요약되는 연구를 이끌고 있다.

탈성장 이론 중 ‘도넛 경제학’은 도넛의 안쪽 테두리를 인간 삶의 필수 조건, 바깥 테두리를 지구 생태가 견딜 수 있는 한계라 설정한다. 성장을 추구하되 두 테두리 사이 ‘도넛 공간’ 안에서만 해 균형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암스테르담 도시 정책에 도넛 경제를 도입하는 등 탈성장 구현 움직임이 나타나곤 있지만, 인류는 여전히 끊임없이 성장해야 경제가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인구와 욕구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 늘어나니 그 수요를 채우려면 성장해야 하고, 인구가 줄어도 욕구는 계속 커지는 터라 만족시키려면 파이를 키워야 한다.

얼마나 성장하는지 가늠하는 건 주류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 숱한 척도가 개발됐다.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경제성장률, 총요소생산성, 고용률·실업률…. 이런 지표는 대개 이미 벌어진 경제활동을 측정해 산출하는데, 잠재성장률은 실제 이뤄지지 않은 가상의 경제활동을 평가한다. 자본과 노동력 등 그 나라 자원을 전부 투입한다고 가정할 때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말한다. 병력과 무기의 전면 투입을 가정해 가상의 전쟁을 해보는 ‘워 게임’과도 같다. 경제란 전장에서 그 나라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다.

한국 잠재성장률이 15년 뒤 0%대로 추락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잠재성장률은 자동차의 엔진 출력에 비유되곤 하는데, 0%는 엔진이 멈춰 선다는 뜻이다. ‘성장하지 않는 경제’는 부양책 정도론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워 게임은 부족한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탈성장의 대안 모델에 눈을 돌릴 게 아니라면 한국 경제의 대수술을 서둘러야 할 때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