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는 빠르고, 의료비는 가파르게 오른다. 통계에 따르면 오는 2033년 우리나라 연간 국민 의료비는 561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2023년(221조원)보다 2.5배 많은 금액이며, 국내총생산(GDP)의 15.9%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의료체계로는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는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도시 중 하나다. 올해 1월 기준 시 인구의 24%에 해당하는 78만여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병원 내원일수와 진료비는 전국 평균보다 높고, 특광역시 중에서는 당연 1위다. 도시 차원의 정책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복지 대안’ 생활체육
부산시는 생활체육을 하나의 ‘복지 대안’으로 꺼내 들었다.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병원에 덜 가게 만드는 예방 중심의 복지 서비스로 체계를 정비한 것이다. 운동이 ‘건강한 도시’를 지탱하는 기반이 된 셈이다.
지난해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부산 시민의 체육활동 참여율은 80.3%로 전국 1위다. 최근 2년 사이에 18.7%P 증가했다. 걷기 실천율은 60.3%로 서울에 이어 2위다. 도보 이용률도 71.1%로 특광역시 중 가장 높다. 이는 시민들이 체육시설에 얼마나 자주, 편하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운동은 의료비 절감과 직결된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이 생활체육에 참여할 경우 1인당 연간 40만원, 국가적으로는 11조원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그 효과가 더 크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운동하는 노인은 1회 미만 운동하는 노인보다 의료비 절감률이 8%P 더 높았고, 같은 운동 횟수라도 체육시설을 활용한 노인의 절감 효과가 더 컸다. 장애인도 1인당 약 21만원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나타나면서,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는 1조 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정신 건강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란 분석이 나왔다. 국민의 86.1%가 운동이 정신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 66.2%는 일상생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실제 생활체육이 의료체계에 선제적 부담 완화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생활체육 천국 도시’ 부산
부산시는 민선8기 출범 이후 ‘생활체육 천국 도시’ 조성을 시정 핵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올해 3월에는 전국 최초로 ‘체육국’을 신설해 전문 조직을 꾸렸고, 파크골프·테니스장 신설 등 인프라 확충에도 과감히 투자해 왔다.
2022년 이후 지금까지 총 415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신규 생활체육시설 41곳을 조성하고 노후 시설 62곳을 개보수했다. 올 상반기 유휴부지 15곳을 추가 발굴해 체육시설 설치를 확정했고, 2026년까지 생활권 접근형 러너 스테이션도 2곳을 설치한다.
특히 시는 토지 확보가 어려운 도시 여건 속에서 기존 시설의 재활용과 공공시설 개방 확대로 생활체육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직원 복지용으로 운영되던 부산교통공사의 테니스장과 축구장 등 시 산하 공사·공단 체육 시설들을 시민 개방형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해당 시설에 대한 개보수도 진행 중이다.
시민 수요에 맞춘 운영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사직 실내 테니스장의 경우 최근 테니스 인구 증가에 맞춰 새벽 2시까지 연장 운영 중이다. “일본에선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고 자랑하던데, 우리는 새벽 2시까지 한다”는 담당자의 말처럼 운영 시간도 시민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시민들의 정보 접근성도 획기적으로 높였다. ‘으랏차차 부산 생활체육포털’은 시설 위치, 프로그램, 대회 정보를 구·군 단위까지 지도 기반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하반기 2975명이던 월 방문자 수는 지난 3월 기준 1만명을 넘기며 3배 이상 증가했다.
부산형 15분 도시 전략도 체육 정보와 결합했다. ‘부산이즈굿 동백전’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이 현재 위치에서 5~30분 이내 체육시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생활권 지도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생활체육은 이제 ‘정책’이 됐다. 시는 이번 달을 ‘생활체육의 달’로 정하고, 11일 현재 전국에서 5000여명의 생활체육 동호인이 참여하는 ‘빅(BIG) 5 스포츠 페스타 in 부산’을 열고 있다. 에어로빅힙합(5월 9~11일)을 시작으로 볼링, 파크골프, 배구, 테니스 대회가 순차적으로 열린다. 빙상, 바둑 등 시니어·청년·장애인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참여형 프로그램도 대폭 확대됐다.
특색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 확대
지역 특색을 반영한 스포츠 행사도 눈에 띈다. 낙동강을 무대로 펼쳐지는 '슬로우 철인3종경기'는 전국 철인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고 있고, 해군 함상에서 열리는 ‘3×3 농구대회’는 해양도시 부산의 색깔을 담은 이색 이벤트로 기대를 모은다.
시는 올해부터 ‘달려라 부산’과 ‘달밤의 체조’ 프로그램도 새롭게 시작한다. 시민공원, 북항 등 야외 공간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요가, 체조, 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을 야간에 함께하는 생활형 운동 문화 확산 시도다.
또 고령층 및 건강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기초 체력 진단-맞춤 운동-재측정까지 체계화한 ‘단계별 건강 체력 개선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문체부 공모 사업으로 선정된 이 프로그램은 국민체력100 센터와 연계돼 전문 측정 및 효과 검증이 이뤄진다.
이 외에도 생활체육 참여자에게 인센티브(튼튼머니)를 제공하고, 체력 측정 인증센터를 통해 맞춤형 운동 처방을 지원하는 ‘과학적 체육 복지’도 함께 운영한다. 장애인 대상 스포츠 강좌이용권은 대상 나이와 지원 금액 모두 확대돼 사설 체육시설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생활체육은 시민 건강의 출발점이자 도시를 바꾸는 힘”이라며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앞서 운동하는 도시의 미래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