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판(談判)은 생각을 달리하는 쌍방이 만나 옳고 그름을 따져 어떤 사안을 일단락 짓는 걸 의미한다. 대화나 협상보다 어감이 센 말로 강하게 맞서고 있는 것을 대좌해 결론을 낼 때 이 말을 쓴다. 영어로는 마지막 패를 보여준다, 결전을 치른다는 ‘showdown’, 최종 협상을 의미하는 ‘final negotiation’, 결정적 회담이란 뜻의 ‘decisive talk’ 등으로 번역된다.
담판은 외교에서도 자주 쓰인다. 상대국과 외교적으로 팽팽히 맞서 있을 때 ‘담판을 벌인다’고 말한다. 멀리로는 고려 때 서희가 거란의 적장을 찾아가 강동 6주를 얻어낸 협상을 ‘서희의 외교 담판’이라 한다. 냉전 시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 미·중 해빙을 이끌어낸 협상도 ‘키신저 담판’으로 기록돼 있다. 외신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을 ‘트럼프와 김정은의 세기적 담판’이라 불렀다. 이번 주 스위스에서 예정된 ‘미·중 관세 담판’에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 말이 곧잘 쓰인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를 할 때 실무자끼리 협상이 안 되면 후보가 직접 만나 담판을 벌이곤 한다. 1997년 15대 대선 때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후보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가 담판으로 DJP연합 단일화에 성공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근년에 가장 ‘아름다운 담판’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 있었다. 당시 50%대 지지를 받던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5% 지지에 그친 박원순 변호사와 ‘20분 담판’ 끝에 후보 자리를 양보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이에 힘 입어 박 변호사가 당선됐다.
단일화 담판은 원만히 끝내면 결과가 좋지만 그 반대일 경우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날 수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의 단일화 담판이 요 며칠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다. 국민들 눈에 ‘아름다운 담판’으로 비쳤을지, 그 반대였을지는 후보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모를까, 만약 선거에서 진다면 볼썽사나운 이번 담판은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를 것 같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