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추장의 방패 같은 모양이 벽에 쭉 걸려 있다. 표면에서 캔버스 천과는 다른 육질이 느껴진다. 그렇다. 소가죽 등 여러 동물 가죽을 캔버스처럼 쓰고 색을 물들였다. 옆에서 보면 두툼한 두께도 느껴지는 이 작품들은 둥둥 두드리는 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가 40대 작가 2명의 개인전을 동시에 하고 있다. 먼저 요한한(42) 작가는 ‘엮는 자’라는 전시 제목으로 조각적 오브제와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모든 작업들의 출발은 퍼포먼스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진 작가 후원 기획전 ‘젊은 모색’에서도 그는 악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퍼포먼스를 돕는 악기 북에 관심을 갖고 어느 때부터 그걸 평면 작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회화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북의 공명통을 납작하게 누른 결과물 같다. 작가는 북에 쓰이는 동물의 외피를 천처럼 쓰면서 색을 물들이기도 하고, 꿰매기도 한다. 한때는 동물의 피부였던 가죽을 꿰맨 흔적은 인간을 위해 희생된 동물을 위무하는 제의적 제스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구지윤(43) 작가는 도시의 건축물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다시 지어지는 자본주의적 속도와 욕망을 추상화된 이미지로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큰 붓을 휘둘러 가시화했던 속도감이 사라졌다. 대신 서성거림, 관조가 붓질에서 느껴진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구 작가는 “아이와 함께 동네를 나가면 내 속도대로 걷지 못하고 아이의 걸음대로 한 곳에 오래 서 있게 되더라. 그러면서 전에는 안보였던 벽의 균열 등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가 회화에서 새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시간을 머금고 있는 건물, 아파트 구석진 곳에서 발견한 거미가 표상하는 쇠락의 이미지다. 첫 붓질은 구체적인 장소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기억 속 이미지가 작은 붓으로 덧칠되면서 화면은 잘게 쪼개져 추상화된다. 오래된 도시 건물에서 긍정성을 발견하는 작가는 이를 ‘그레이(회색)’가 아닌 빛을 반사하는 성격의 ‘실버’라 명명했다. 전시 제목도 ‘실버’다. 내달 7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