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창업가에겐 직감이 중요한데 이는 일에 미쳐야 나온다. 해당 분야에서 주당 80시간씩 일해보라.”
노력이 기질을 압도한다는 ‘노력 신봉 사회’이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 가치로 여기는 요즘 사회 흐름과는 어딘지 안 맞는다. 인공지능 발달로 최근 정치권서 주 4일 근무제도 논의되는 실정인지라 더 그렇다. 통념을 거스르는 듯한 이 말들의 주인공은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이미지솔루션스’(ISI)와 캐나다 농업회사이자 비즈니스 선교 기업 ‘긱섬’을 창업한 김진수(69) 한동대 겸임교수다.
미국 스티븐슨공과대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92년 ISI를 혈혈단신으로 창업해 영국 독일 중국 등에 지사를 둔 500명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할 신약 신청 문서를 PDF 파일로 제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최초 개발해 승승장구한 그는 18년간 ISI를 경영하다 2010년 미국 다국적기업 CSC에 매각하며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했다.
전작 ‘선한 영향력’과 지난해 10~11월 국민일보에 연재한 ‘역경의 열매’가 김 교수의 사업과 인생 연대기에 집중했다면 신간은 기독교인의 창업정신과 그 현실에 관한 이야기에 무게를 둔다. 책은 15년째 긱섬을 경영한 그가 해외 창업을 준비하는 선교사와 청년을 멘토링하며 느낀 점을 토대로 집필한 것이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저자는 “선교사·청년의 창업이 대체로 실패하는 건 창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창업했기 때문”이란 결론을 얻는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달란트 비유’(마 25:16~30)와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언급된 ‘면제년’(신 15:9)을 묵상하며 발견한 깨달음도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탠다.
달란트 비유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나온다. 앞선 두 사람은 장사해 추가로 달란트를 남겼지만 마지막 종은 땅에 달란트를 묻었다는 이유로 ‘악하고 게으르다’는 평을 듣는다.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꾸짖는 주인이 의아했던 저자는 신명기 속 면제년에서도 비슷한 의문을 품는다. 사업하는 처지에선 7년마다 돌아오는 면제년을 피해 대출해주는 게 당연한데도 신명기가 이를 죄라고 명시해서다. 저자는 이를 “하나님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죄이자 악한 것으로 여긴다”며 “각자의 달란트에 맞게 최선을 다해 열매 맺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반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 관점에서 저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창업가로 본다. 천성이 일에 맞고 사업에 재능 있는 사람이 가족을 넘어 이웃을 돌보는 게 하나님 뜻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창업가로 타고난 이들의 특성을 전한다. ‘일이 즐겁고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는 사람’ ‘새로운 일에 도전하길 즐기는 사람’이 그렇다. 반면 창업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특징으로는 ‘일을 시켜주길 기다리는 사람’ ‘안정만을 도모하는 사람’ 등을 꼽는다.
이런 천성과 더불어 정직과 공정, 나눔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추구하는 게 저자가 생각하는 기독 창업가의 차별점이다. 그는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말은 장기적으로 볼 땐 틀린 말”이라며 “3년 이상 사업할 생각이라면 정직해지는 것이 이득이다. 그것도 상대방이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끝까지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선교사의 창업에 대해 시종일관 비관적인 그이지만 애정 어린 조언도 전한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선교사·창업가·사업가가 함께 해외 창업에 나서는 모델이다. 그는 “사업에 집중할 창업가와 자본과 경험이 있는 사업가, 현지 상황을 아는 선교사가 각자의 장점을 활용한다면 총체적인 비즈니스 선교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스펙 쌓기나 후원 부족, 노후 대비 등을 이유로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돌직구 직언’을 날리는 책이다. 그렇지만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를 받은 이들에게 창업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라고 강요하는 책은 아니다. 꼭 사업이 아니더라도 모든 이에겐 저마다 타고난 달란트가 있다. 각자가 이에 맞는 열매를 맺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결론 아닐까.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