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88)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신교계에서 ‘기독교의 양심’으로 통한다. 서울대 교수, 한성대 이사장, 동덕여대 총장, 고신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창립하는 등 한국 시민운동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명망 높은 철학 교수이자 작가인 그는 교계에서 기독교 윤리에 어긋나는 일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대표적 원칙주의자다. 누구든, 예외는 없다. 늘 약자의 편에서 서서, 기부와 나눔을 일상으로 삼는 검소함도 그를 설명하는 요소다.
최근 출간한 회고록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우리학교)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신앙을 갖게 된 중학생 때의 경험, 서울대 진학과 유학 생활, 그리고 시민운동에 뛰어든 여정까지 인간 손봉호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회고록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
“이번 회고록은 2023년 국민일보에 연재했던 ‘역경의 열매’라는 자전적 글을 바탕으로, 그동안 다하지 못한 이야기와 생각을 추가해 펴낸 책이다. 연재 당시 내 삶을 다시 돌아보며 어린 시절의 가난과 전쟁, 교육자와 시민운동가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연재가 끝난 뒤 책으로 엮어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았다. 나 역시 평생 품어온 가치와 고민을 한번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유년 시절부터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며 얻은 깨달음, 그리고 귀국 후 교육과 시민운동에 헌신해온 과정이 담겨 있다.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실천이 왜 중요한지, 그 실천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도 진솔하게 담았다.”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표지 그림은 김원숙 화백이 내 삶을 빗대 그려준 작품이다. 한창 바쁘게 대학 강의와 시민운동, 교회 사역까지 감당하던 시절 세상 모든 짐을 혼자 진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산을 등에 지고 가는 듯한 마음이었다. 김 화백이 그런 나를 ‘산을 지고 가는 남자’로 표현해준 게 책의 표지가 됐다.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라는 책 제목도 무거운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려 했던 내 인생의 태도가 담긴 것이다.”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산’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가족 중심에서 빠르게 개인주의로 옮겨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약자에 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성경이 강조하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사치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그 여유를 약자를 위해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가 더 인간다워지려면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르는 약자, 소외된 이웃을 향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기부와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감정적으로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니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 건 동정심이 아니라 의무감에서였다. 사회로부터 받은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왔다. 사치 대신 약자를 위해 쓰는 것이 진정한 가치라고 믿고, 내가 가진 것 중 일부라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눔은 착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라고 여긴다.”
-교육자 철학자 신앙인으로서 삶의 원칙이 있다면.
“나는 ‘정직’과 ‘타인 중심의 윤리’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정직의 초점은 내가 정직하다는 자기만족이 아니라, 내 행동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 있다. 성경의 계명도 결국 타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사랑과 정직도 자기만족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실천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내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만드는 데 있다. 독자들도 그런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