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품어온 가치·신앙·삶의 여정 담았죠”

입력 2025-05-09 03:05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에서 회고록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봉호(88)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신교계에서 ‘기독교의 양심’으로 통한다. 서울대 교수, 한성대 이사장, 동덕여대 총장, 고신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창립하는 등 한국 시민운동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명망 높은 철학 교수이자 작가인 그는 교계에서 기독교 윤리에 어긋나는 일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대표적 원칙주의자다. 누구든, 예외는 없다. 늘 약자의 편에서 서서, 기부와 나눔을 일상으로 삼는 검소함도 그를 설명하는 요소다.

최근 출간한 회고록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우리학교)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신앙을 갖게 된 중학생 때의 경험, 서울대 진학과 유학 생활, 그리고 시민운동에 뛰어든 여정까지 인간 손봉호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회고록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

“이번 회고록은 2023년 국민일보에 연재했던 ‘역경의 열매’라는 자전적 글을 바탕으로, 그동안 다하지 못한 이야기와 생각을 추가해 펴낸 책이다. 연재 당시 내 삶을 다시 돌아보며 어린 시절의 가난과 전쟁, 교육자와 시민운동가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연재가 끝난 뒤 책으로 엮어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았다. 나 역시 평생 품어온 가치와 고민을 한번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유년 시절부터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며 얻은 깨달음, 그리고 귀국 후 교육과 시민운동에 헌신해온 과정이 담겨 있다.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실천이 왜 중요한지, 그 실천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도 진솔하게 담았다.”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표지 그림은 김원숙 화백이 내 삶을 빗대 그려준 작품이다. 한창 바쁘게 대학 강의와 시민운동, 교회 사역까지 감당하던 시절 세상 모든 짐을 혼자 진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산을 등에 지고 가는 듯한 마음이었다. 김 화백이 그런 나를 ‘산을 지고 가는 남자’로 표현해준 게 책의 표지가 됐다.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라는 책 제목도 무거운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려 했던 내 인생의 태도가 담긴 것이다.”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산’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가족 중심에서 빠르게 개인주의로 옮겨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약자에 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성경이 강조하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사치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그 여유를 약자를 위해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가 더 인간다워지려면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르는 약자, 소외된 이웃을 향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기부와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감정적으로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니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 건 동정심이 아니라 의무감에서였다. 사회로부터 받은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왔다. 사치 대신 약자를 위해 쓰는 것이 진정한 가치라고 믿고, 내가 가진 것 중 일부라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눔은 착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라고 여긴다.”

-교육자 철학자 신앙인으로서 삶의 원칙이 있다면.

“나는 ‘정직’과 ‘타인 중심의 윤리’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정직의 초점은 내가 정직하다는 자기만족이 아니라, 내 행동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 있다. 성경의 계명도 결국 타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사랑과 정직도 자기만족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실천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내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만드는 데 있다. 독자들도 그런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