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림 속 서사에 공자의 지혜를 버무리다

입력 2025-05-09 00:07
공자의 철학이 담긴 논어는 시대를 초월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실천적 지혜를 제공한다. 책은 조선 시대 그려진 옛 그림을 통해 논어의 문장을 다시 새긴다. 신윤복의 '유곽쟁웅'. 토트 제공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옛 그림’를 공부하면서도 ‘뭔가 더 필요하다’는 절박감을 느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책장에 꽂힌 ‘논어’를 펼쳤다. “가슴 속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듯한” 경험을 하며 논어에 몰입했다. 힘과 위안을 주던 옛 그림을 공부할 때 느꼈던, 같은 경험이었다. 논어 이후, 옛 그림을 볼 때마다 논어의 문장이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읽는 논어’를 나누고 싶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이 책이다. 옛 그림은 성리학이 중심인 조선 시대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인간 본성과 우주 원리를 탐구하는 성리학의 근본은 공자의 사상이다. 그러니 조선 시대의 회화와 공자의 사상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옛 그림에 대한 풍성한 설명과 함께 공자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책의 미덕이다.


논어의 첫 문장이자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다. 책도 배움을 소재로 한 옛 그림으로 시작된다. 소나무 아래 경치 좋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선비와 차를 끓이던 동자가 졸고 있는 모습이 대조된 이명기의 ‘송하독서도’가 논어의 첫 문장과 연결된다. 소나무는 선비의 오랜 독서 시간을 상징하는 회화적 소재다. 당나라 시인 왕유가 쓴 “문을 닫고 책을 쓴 지 여러 해, 심어 놓은 소나무에 모두 용 비늘이 났구나”라는 문장에서 시작된 전통이다. 저자는 송하독서도에서 선비의 입가에 머금은 미세한 미소에 주목한다. 저자는 “심어 놓은 소나무가 늙도록 독서에만 몰입했던 선비의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면서 “독서를 통해 옛것을 깨닫는 기쁨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행복감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작품”이라고 평한다.

신윤복은 조선 시대 기방 앞에서 술 취한 양반들의 싸움 장면을 생생하게 그린 ‘유곽쟁웅’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윗옷을 반쯤 풀어헤친 한 남자와 상투가 풀려 인상을 찡그린 다른 남자를 한심한 듯 지켜보는 기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옛 그림에 등장하는 한심한 양반들은 공자의 “군자는 자긍심을 지니기 때문에 다투지 않고, 여럿이 어울리지만 편당을 가르지 않는다(君子矜而不爭,群而不黨)”의 말씀을 잊은 지 오래다.

김홍도의 '과로도기도'. 토트 제공

옛 그림과 논어가 직관적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그림 속 숨은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논어의 문장을 떠올리기 힘든 경우도 많다. 김홍도의 ‘과로도기도’가 대표적인 경우다. 장과로라는 이름의 신선이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는 모습을 담은 그림 속에는 박쥐 한 마리가 등장한다. 박쥐의 한자어인 ‘복(蝠)’이 복을 의미하는 ‘복(福)’자와 동음이어(同音異語)라는 점에서 옛 그림이나 공예품에는 박쥐를 통해 행운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 전통이 있다. 저자는 동음이어의 전통을 논어의 공야장 편에 나오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不恥下問·불치하문)”라는 문장과 연결짓는다. 공자와 얽힌 ‘공자천주(孔子穿珠·공자가 구슬을 꿰다)라는 고사와 관련된 것이다. 공자는 아홉 구비로 구멍이 뚫린 구슬에 실을 꿰지 못해 애를 쓰던 중, 바느질에 능한 시골 여인에게 조언을 구한다. 여인은 “조용히 생각하라”는 말을 남긴다. 공자는 순간 무릎을 친다. 조용하다는 의미의 ‘밀(密)’에서 꿀 ‘밀(蜜)’자를 떠올렸다. 공자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허리에 실을 매고, 반대쪽 구멍에 꿀을 발라 개미가 구슬을 통과하도록 해 실을 꿰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옛 그림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남에게, 심지어 아랫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이에게도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공자의 겸손을 읽어낸다.

김정희의 '자화상'. 토트 제공

저자는 조선의 화가들이 남긴 많은 자화상 속에서도 숨어 있는 공자의 말씀을 길어 올린다. 추사 김정희가 남긴 ‘자화상’은 노년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고 평범한 시골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서투른 붓질로 소탈하게 묘사해 마치 이웃에 사는 노인을 보는 듯하다”고 설명한다. 김정희는 화제(畵題·그림에 적힌 제목이나 시)를 통해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네. 옳다 해도 나이고, 그르다 해도 나이니 시비간(是非間)에 나라고 할 것이 없네”라고 덧붙였다. 김정희의 고백은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공자는 네 가지를 끊으셨으니, 사사로운 뜻을 지니지 않으셨고, 기필코 하려는 게 없었고, 고집하지 않으셨고, 나를 내세우지 않으셨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김정희의 자화상에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벗어난 자유자재한 경지”를 목격하며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는 공자의 말씀을 되새긴다.

저자는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을 소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군자는 그릇처럼 한정된 존재가 아니라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얼마든지 성장 가능한 존재라는 의미다. 우리의 그릇을 키우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은 인문학 공부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옛 그림으로 논어를 읽으면서 그릇을 키울 수 있는 기회다.

⊙ 세·줄·평★ ★ ★
·옛 그림에 대한 안목을 키워준다
·논어를 쉽게 시작하는 새로운 방법일 수 있겠다
·논어의 '깊이 읽기'에 대한 기대는 잠시만 접어 두자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