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광주고법의 의미 있는 회의

입력 2025-05-08 00:38

지난달 21일 광주고등법원에선 한 회의가 열렸다. 법관들이 2025년 관내 양형실무위원회 정기회의에서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는 ‘기습 공탁’과 진정성 없는 ‘대필 반성문’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 자리였다.

당시 주제 발표에 나선 범선윤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변론에서 보인 태도와 다르게 감형을 노리고 선고기일 직전 피해자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공탁해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을 받는 사례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기습 공탁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최한결 광주지법 판사 역시 “피고인이 응당 지급해야 할 민사상 손해배상이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 회복과 관련해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 요소로 반영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렇듯 최근 형사 사건에선 기습 공탁과 대필 반성문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202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강남 스쿨존 음주사고에서 가해자는 항소심 선고를 열흘여 앞두고 기습 공탁을 했고, 재판부는 이를 고려해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5년으로 형량을 낮췄다.

올 2월에는 축구선수 황의조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이 황씨의 기습 공탁을 유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이 같은 기습 공탁은 공탁금을 수령할 생각이 없고 합의를 원하지도 않는 피해자가 피고인이 공탁금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감형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심어줬다. 더 나아가 피고인이 공탁금을 걸어두고 선처를 받은 뒤 피해자가 이를 수령하지 않은 틈을 타 공탁금을 회수해 가는 이른바 ‘먹튀 공탁’ 사례도 나왔다.

감형과 선처를 목적으로 대필 반성문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에 반성문 대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 2023년 변호사법·법무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온라인 대필 서비스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대필 신청 양식과 함께 ‘단 5분 정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재판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 법원도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지난 3월 대법원에선 양형위원회를 열고 성범죄 관련 기습 공탁을 방지하는 등 양형 기준을 변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제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달라진 양형 기준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 것이다. 법원이 현장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고법의 회의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광주고법은 양형실무위 정기회의 발표와 토론 결과를 원외재판부인 전주, 제주 형사재판부와 별도 간담회를 통해 공유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공정한 양형에 관한 논의를 호남·제주권 전역의 법원으로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설범식 광주고법원장은 “항소심을 담당하는 고법 형사재판부가 양형 요소를 명확히 이해하고 적용해 하급심에 바람직한 영향을 줌으로써 관할 지역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공정한 양형 실무가 형성되도록 견인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법원들도 새겨들을 말이다.

법원은 최근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있다. 탄핵 정국에선 서울서부지법이 공격을 받았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지연 논란을 빚었다. 이제 조기 대선이 시작되자 지금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법원은 법리에 충실한 신속한 판결과 함께 이렇게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논의가 계속 이뤄져야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모규엽 사회2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