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전승절

입력 2025-05-08 00:40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선언한 인물은 종전 당시 나치 독일의 국가대통령이었던 카를 되니츠다. 아돌프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그가 국가대통령이 됐다. 히틀러는 자신의 사후에도 마지막까지 독일군을 독려하며 싸울 것으로 기대해 그를 후계자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되니츠는 소련군과는 맞서 싸우려 했으나 결국 베를린으로 소환돼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베를린 시각으로 1945년 5월 8일 23시 43분, 모스크바 시각으론 5월 9일 0시 43분이었다. 5월 8일이 전승절(戰勝節)인 상당수 국가와 달리 러시아의 전승절이 5월 9일인 이유다.

전승절은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연합군 참전국 다수는 나치 독일의 항복 선언일을 전승절로 지정했고, 우리나라와 중국 등은 일본의 패전을 기념한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고, 중국은 일본의 중국파견군 사령관으로부터 항복 문서를 받은 1945년 9월 3일을 항일전쟁승리기념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해 기념일을 지정하는 국가도 있다. 북한은 6·25 전쟁 휴전일인 1953년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라며 기념한다. 남침을 북침으로 조작한 것도 모자라 휴전 상태임에도 이겼다고 자기합리화하며 만든 기념일이다.

올해 80주년 전승절을 맞아 러시아는 성대하게 행사를 준비했는데 우리에겐 북·러 밀착 움직임이 관심이었다. 북한군 파병 등으로 두 나라가 급격히 가까워진 만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나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참석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크렘린궁의 유리 우샤코프 외교정책 보좌관은 6일(현지시간) 이번 행사에 북한 대표로는 대사급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열병식 참석 목록에도 북한군은 없었다. 다만 우샤코프 보좌관은 “조만간 알게 될 또 다른 흥미로운 만남이 있을 것”이라며 별도의 북·러 접촉 가능성을 예고했다.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러시아 전승절이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