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캐릭터와 혼연일체 된 아들의 목소리가 현란한 효과음과 함께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평일엔 게임이 허용되지 않는 초등 6학년 아이에게 주말 2시간은 골든타임이다. 한정판 아이템이 주어지는 이벤트가 주말 게임시간과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개기일식 우주쇼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아들에게서 만날 수 있다.
초등 4학년 딸은 요즘 아이돌 그룹에 푹 빠졌다. 온갖 캐릭터 굿즈와 포카(포토카드)를 수집하느라 용돈을 탕진하다보니 늘 주머니는 비어 있다. 대화의 흐름은 ‘기승전(아이)돌’이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거 하나 사주면 안 돼요? 친구 누구는 이런 것도 갖고 있어요” 같은 말이 어느새 따라붙는다. 즐거움을 향한 아이들의 욕망을 비난할 권리는 세상 어느 어른에게도 없다. 낚싯대, 전자기기, 명품백 등 꼭 갖고 싶었던 아이템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넣어놓고는 업무시간에도 틈틈이 결제 화면을 껐다켰다 반복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해마다 5월 초가 되면 아이들의 이런 욕망은 최고조에 달한다. 올해 어린이날을 앞두고 초등교사노조가 초등학생 3~6학년 18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19.1%)가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에 등극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이나 스마트폰, 게임기 등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예쁘지만, 부모 입장에선 방정환 선생을 향해 ‘이러려고 어린이날 만드셨나’라는 묵언 호소가 절로 나오는 게 현실이다. 전쟁 같은 육아터에서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스러운 시기인 셈이다.
심리학적으로도 갖고 싶은 선물을 받는 것은 아이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 욕구가 충족될 때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보상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 만족감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고, 이 감정은 자기 효능감 형성과 자존감 향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부모로서 이 시기를 자녀의 ‘도파민 파티’에 머물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꼭 함께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어린이날을 ‘나만의 유익을 위한 날’을 넘어서 ‘누군가를 위한 나눔의 날’로 기억하게 하는 과정이다.
매년 어린이날이면 남매에게 말한다. “올해는 어떤 친구에게 선물을 보낼까?”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달고 전해질 후원 대상자를 찾는다. 올해는 중증 지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다섯 살 선아(가명)가 주인공이다. 선아의 언니는 중증 지적장애와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오빠는 유전성 혈액 응고 질환인 폰빌레브란트병과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 콜센터에 근무하며 홀로 삼남매를 양육하는 선아 엄마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눈물겨운 사연에 비하면 남매가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랑은 작디작다. 하지만 아이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자신이 얹어 놓은 작은 나눔 돌멩이가 또 다른 돌멩이의 주춧돌이 되어 언젠가 돌탑을 쌓아올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육아 전문가들은 “공감과 나눔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릴 때부터 작은 실천을 반복하며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훈련을 해온 아이가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성경은 가르쳐준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말이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친절하고 착한 어른’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어른’ ‘웃음이 많은 즐거운 어른’을 톱3로 꼽았다. 앞으로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좀 더 명확해진다. ‘나만 행복한 날’이 아니라 ‘나도 행복한 날’ 그래서 ‘모두 행복한 날’을 지향해 갈 때, 어린이들이 친절하고 착하며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즐거운 어른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
최기영 미션탐사부 차장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