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2000년대부터 팬데믹 이전까지, 여가 시간에 극장을 찾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의 활성화와 코로나19 위기는 극장과 대중의 심리적 거리를 크게 벌여놓았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면서 극장 관객 수는 줄어든 반면 OTT 이용률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연도별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17년 36.2%에 불과했던 한국의 OTT 이용률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66.3%로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엔 국민 10명 중 8명이 OTT로 콘텐츠를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말 성인 기준 영화 티켓값이 1만5000원을 찍으면서, 그리고 OTT를 통해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전 세계의 웰메이드 작품들을 접하면서 극장에서 보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눈은 더 깐깐해졌다. 극장에서 철 지난 ‘창고 영화’가 개봉될 때 대중은 OTT를 통해 신선한 작품들을 감상한다. 원하는 시간에 집에 편히 누워서 볼 수 있는 OTT와 비교했을 때 영화관의 가성비 또는 가심비가 떨어진다는 경험이 누적되며 영화관을 찾는 발길은 뜸해지고 있다.
OTT에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기존의 영화 ‘흥행공식’도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공들인 대작은 실패하고, 예기치 못한 요인으로 입소문을 탄 영화들이 1000만 관객을 넘기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팬데믹 이후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대표작 ‘서울의 봄’(2023)과 ‘파묘’(2024)는 모두 흥행공식에서 벗어났다.
시기적으로 두 작품은 과거 비수기로 여겨졌던 11월과 2월에 각각 개봉했다. 소재·장르적 특성의 경우 ‘서울의 봄’은 젊은 세대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역사물이었고, ‘파묘’는 대규모 흥행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여겨져 온 오컬트물이었다.
크게 투자한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사례가 줄을 잇자 투자는 점점 줄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으로 제작·개봉한 상업영화 37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을 16.44%로 잠정 집계했다.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쇼박스 관계자는 7일 “팬데믹 전에 개봉했더라면 200만~5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던 영화 상당수가 이제는 100만을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극장 산업이 위축돼 투자금 회수가 안 되니까 재투자를 못하고, 재투자를 안 하니까 개봉작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극장용 영화 작업을 고집하던 창작자들이 OTT로 넘어간 것도 극장 영화가 줄게 만든 요인이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박찬욱, 연상호, 이준익, 박훈정, 황동혁 등 흥행작을 만들어 온 감독들이 최근 OTT 영화나 시리즈물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시나리오 자체가 줄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극장에 걸 영화를 꾸준히 작업하던 감독들이 OTT 작품에 참여하면서 영화 기획도 줄었다”며 “이 사람들이 다시 영화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올해와 내년이 그 공백기인 셈”이라고 짚었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근 진행한 내한 인터뷰에서 “일본도 영화가 쭉 위기였지만, 극장 영화를 고집하는 감독이 남아있는 듯하다”면서 “(한국의 경우) 창작자들이 OTT로 이동한 것도 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을 줄게 한 원인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임세정 정진영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