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공간을 기억하게 하는 향, 다음세대 복음화에 활용했으면”

입력 2025-05-10 03:05
황인권 파르품삼각 대표가 최근 서울 용산구 ‘용리단길’에 위치한 매장에서 향에 담긴 사회문화적 의미와 다음세대를 위한 한국교회의 문화적 접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팝업스토어 성지로 자리매김한 서울 성수동과 함께 대표적 ‘핫플’로 꼽히는 용리단길(서울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 일대 골목길)엔 MZ세대 사이 유행하는 맛집과 카페, 인증샷 명소가 즐비하다. 그 가운데 골목길 한 편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는 매장이 있다. 후각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입구부터 바닥, 좌우 벽면과 천장까지 불그스름한 노을빛으로 채워진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300여개의 향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향으로 동네를 경험하게 하는 로컬 퍼퓨머리(local perfumery) 파르품삼각(대표 황인권)이다. 황인권 대표가 이곳에 매장을 마련한 건 5년 전 아내 정민경 대표, 반려견 ‘콩이’와 묵상하듯 산책하던 걸음이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15년 넘게 용산에 살았는데 반려견을 키우면서부터 동네 주변을 걷기 시작했어요. 월요일엔 남산, 화요일엔 이태원, 수요일엔 한강 방향으로 매일 5~6㎞씩 걷다 보니 한 달이면 거의 180㎞, 매년 2000㎞ 넘게 걷게 되더군요. 그렇게 7년을 걸으면서 동네의 기억과 풍경, 분위기를 담은 향을 만들고 소개하고 싶어졌지요.”

부부는 대학에서 각각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신혼여행지에서 향수 매장 돌아보는 일정을 따로 계획할 정도로 향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은 2019년 조향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파르품삼각 브랜딩에 나섰다. 그렇게 만들어 낸 세 가지 향의 이름이 남산 이태원 한강이다.

황 대표는 “소나무 향을 담아낸 남산엔 로고에 삼각형을 넣어 산을 표현했고, 한강에는 시트러스 향으로 강물을 표현하고 콘셉트 삼은 노들섬을 사각형 로고로 담아냈다”며 “외국 레스토랑에 온 듯한 이국적인 느낌을 오리엔탈 향으로 표현한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지구를 떠올리며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고 설명했다.

매장에서 세 가지 향을 담은 제품을 판매하긴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늘어난 건 이들 제품 때문이 아니다. 향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자신의 향을 찾길 원하는 MZ세대 취향을 사로잡은 ‘올팩티브저니(Olfactive Journey) 클래스’가 결정타였다. 황 대표는 “2030세대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소비하는 게 일상이지만 향수는 온라인에 수만개가 있어도 직접 맡아볼 수 없다면 경험의 깊이는 제한된다”며 몰입형 향수 시향 프로그램인 ‘올팩티브저니 클래스’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약 2시간 반에 걸쳐 전 세계 60여개의 향수를 시향하고, 각 향수에 사용된 원료와 브랜드의 특징, 그 향수를 만든 조향사와 향수 트렌드까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경험할 수 있는 이 클래스에는 그동안 누적 1800명이 참여했다. 내년까지 30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황 대표가 진행하는 이 스토리텔링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향에 담긴 다양한 원료가 시간을 거슬러 성경 속 장면과 만나는 지점이다.

“노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방주를 만드는데, 성경에선 (그 재료가) 잣나무라고 표현돼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 나무는 이탈리안 사이프러스 나무예요. 한국엔 똑같은 나무가 없어서 그렇게 번역을 한 거죠. 샤넬의 ‘에든버러’라는 향수엔 베르가못 향에 사이프러스 아로마가 어우러집니다. 에든버러를 시향하면서 노아가 방주 만들던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그 순간 향기로 가득하던 그의 일터가 말씀으로 채워진다. 이 같은 설명엔 디자인을 전공하기 전 신학도의 길을 걷고 전도사로 사역했던 황 대표의 신앙이 녹아있다. 디자인과 사역의 경력을 모두 가진 그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유명 교회들과 선교단체의 공간 브랜딩, 로고 리뉴얼에도 참여해 왔다. 가평 필그림하우스, OMF선교회 로고 등이 대표적이다.

황 대표는 “수년째 시향 클래스에 참여하는 MZ세대를 만나오며 느낀 건 명품 가방을 드는 것보다 니치향수(소수를 위한 프리미엄 향수)를 뿌림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가의 니치향수 구매자의 80%가 20~30대고, 세계적인 향수 브랜드가 서울 성수동, 가로수길 등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따라 선보이며 한국이 글로벌 향수 업계의 중심에 서는 현상을 한국교회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의 발걸음이 쏠리는 공간에 그곳의 경험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고유의 향이 있다는 점을 한국교회 브랜딩에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눈에 보이는 것에 열광하는 ‘비주얼 문화 시대’엔 시각적인 디지털이 미치는 영향이 막강합니다. 그런데 디지털로 제공하지 못하는 경험 중 가장 강력한 것이 향이죠. 전 세계 유명 호텔이 입구에서부터 그 공간을 위해 조향한 향기로 고객을 맞이하는 이유예요. 교회도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좋은 향으로 성도를 환대하고, 주일예배를 마친 성도들이 교회 밖에서 일상을 보낼 때도 그 향기가 교회 공동체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 되는 거죠. 관건은 관심입니다. 젊은 세대가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향기에 교회 안의 기성세대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웃음) 다음세대 복음화를 위한다면, 답은 나오지 않을까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