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알바 생활] 공장 왕언니들의 세계

입력 2025-05-10 00:33

유명 아이돌 앨범 포장 공장으로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처음 간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공장은 논밭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창고였다. 출근을 하니 외제차 몇 대를 포함해서 알바들이 운전해 온 차가 20여대 서 있는 건 똑같았다.

이전 공장에서 이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왕언니들이 최애하는 전설의 공장이라고. 회사 직원이 아닌 알바들이 공정을 관리하고 누구나 가고 싶어한다고. 나는 기대를 품고 출근했다.

공장 입구에 들어서니 말로만 듣던 왕언니가 출근부를 들고 나를 맞았다. 그런데 언니가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각을 한 것도 아니고 9시 10분 전이었다. 안쪽에는 벌써 30명쯤 알바로 가득했다. 출근 체크를 하고 작업대로 가니 벌써 10여명이 빼곡히 앉아 자리가 없었다. 가운데 앉은 왕언니에게 말하니 가서 의자를 찾아오라고 했다.

구석구석을 뒤져 의자를 찾았지만 바퀴가 달리고 한쪽으로 기우뚱 기울어진 학습용 의자였다. 할 수 없었다. 의자를 끌어 작업대로 가져가 앉자 요란하게 소리가 나며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 기울어졌다. 다들 쳐다보는데 서러워졌다.

억지로 앉아 어떻게 할 줄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왕언니가 옆의 언니한테 가르쳐 주라고 말했다. 옆 언니는 나에게 와 포장지로 박스를 만드는 법을 한번 보여주었다. 1분 동안. 그리고 “쉽죠?” 하고는 가 버렸다. 물론 쉬웠다. 그러나 1분 만에 다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포장 박스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좀 버벅거렸다. 그걸 보더니 5분 만에 왕언니가 말했다. “새로운 언니! 너무 못한다! 가서 포장지나 날라요.”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 알바 한 명이 거대하게 쌓인 포장지를 3개의 작업대에 뭉텅이로 날라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뭉텅이가 무거워 보였다. 할 수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남자 알바와 함께 나르기 시작했다. 계속 몸을 숙였다 펴야 해서 1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아파왔다.

계속 여기저기서 재촉을 해 정신없이 나르는데 갑자기 작업대 언니들이 일제히 일어나 구석에 있는 빈 작업대로 갔다.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계속 포장지를 날랐다. 그런데 구석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빈 작업대에는 한식 뷔페가 차려져 있었고 언니들이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지금 점심시간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얼른 갔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다. 다들 작업대 의자를 가져와 앉아 “오늘 제육볶음 맛있다” 하고 수다를 떨며 밥을 먹고 있었다. 다시 구석구석 의자를 찾았지만 없었다. 그냥 돌아와 식판을 잡고 밥을 담았다.

그런데 뷔페 반찬통에 반찬이 거의 없었다. 김치와 멸치만 조금 남아 있었다. 할 수 없이 김치와 멸치만 담아 혼자 서서 밥을 먹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왕언니는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내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전설의 공장 왕언니들의 세계는 냉정했다. 처음 온 알바에게는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는가? 식판 밥 위로 눈물이 톡 떨어졌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