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중심 세계질서에서
저개발국가 중요성 점점 커져
최근 아세안·인도태평양으로
대외정책 강조점 전환한 한국
구체적 전략, 강한 추진력으로
지역별 맞춤형 협력 만들어야
저개발국가 중요성 점점 커져
최근 아세안·인도태평양으로
대외정책 강조점 전환한 한국
구체적 전략, 강한 추진력으로
지역별 맞춤형 협력 만들어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입니까?”
2023년 12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개최된 아틀란틱대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학자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인도의 전직 외교장관은 강하게 부정했다. “우리 글로벌 사우스는 저개발의 기억을 공유하고, 여전히 개발도상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제국주의적 야망을 경계합니다. 개도국에 많은 차관을 제공하면서 영향력을 투사하고, 일대일로 사업으로 전 세계를 자신의 이해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 참가자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모인 대다수 인사들은 이 판단에 동의했다.
1969년 미국의 정치운동가 칼 오글스비가 처음 이 단어를 사용한 이래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 등 국제기구와 학자들은 선진국 클럽인 ‘글로벌 노스’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글로벌 사우스’의 범주를 상정해 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1955년 반둥회의의 비동맹그룹에서 시작해 지금도 유엔에서 활동하는 G77(Group of 77)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사우스는 저개발국을 통칭하는 용어로 이해됐다. 냉전시기 서방 진영과 대립하던 소련은 당연히 글로벌 사우스가 아니었고, 중국은 응당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었다.
G2라고 불릴 정도로 급성장한 중국에 대해 최근 글로벌 사우스의 경계심이 부쩍 높아졌다. 러시아와는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인식도 그대로다. 이 상황에서 세계를 이분법으로 보는 것은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이해하는 데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서방 진영의 글로벌 웨스트,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글로벌 이스트, 그리고 개발도상의 글로벌 사우스로 보는 것이 미·중 경쟁 아래 세계 질서의 변화를 해석하는 데 훨씬 더 유용하다.
글로벌 사우스는 지금 글로벌 웨스트 및 글로벌 이스트와 어떤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대변자 자리를 놓고 중국과 인도가 경쟁하는 작금의 상황을 글로벌 사우스는 잘 이해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서방과 대립하면서 중동과 아프리카에 정성을 쏟고 있는 러시아 대외 정책의 본질도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지금 세계 질서 재편 과정을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과 각성 아래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의 대립과 타협 과정에서 나오는 산물로 보면 새로운 눈이 열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외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최근 수년 동안을 돌이켜보면 우리의 대외 정책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나 인도태평양 전략, 그리고 신남방 정책이 있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자리잡은 분단국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인식을 토대로 대륙으로 뻗어나가려는 웅대한 포부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유라시아 정책을 바라보는 중앙아시아와 캅카스는 이 정책을 한국의 대중국, 대러시아 정책의 종속변수로 본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문제가 생기면 유라시아 정책은 증발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우리 못지않게 다변화를 갈구하는 이 나라들은 질식할 것 같은 중국과 러시아를 피해 한국을 제3의 협력 대상으로 삼고 싶은데 유라시아 정책으로 퉁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한국 최초의 해양안보 전략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난 80년 동안 사실상 섬나라로 살아 온 우리나라는 이 정체성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통일을 통해 대륙과 직접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미국 등이 다투어 발표했던 인도태평양 전략은 마치 브릭스가, 글로벌 이스트가 글로벌 사우스를 묶어 두려는 그랜드 전략인 것처럼, 글로벌 웨스트가 글로벌 사우스와 연결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발표만 하고 정책 추진이 실종된 전 정부의 우를 범하지 말고 해양안보 전략은 어떠한 형태로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신남방 정책은 인도와 아세안에서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이러한 성공적인 안착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글로벌 사우스 협력 전략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연대와 공동 번영의 공통 가치를 확인하는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와 함께할 수 있는 공통 프로그램과 지역별 맞춤형 협력 전략을 본격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세 개의 세계로 분화하고 있는 작금의 세계 질서에서 우리의 대외 전략이 시의적절하고 유효함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