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목사의 햇볕 한 줌] 탈권위시대의 법치주의

입력 2025-05-07 00:31 수정 2025-05-07 11:18

법원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법관들만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이다. 건강한 민주사회는 신뢰받는 사법기관이라는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러한 문제에 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의외로 성경은 문자로 된 법에 대해 무비판적 신뢰를 강력히 경계한다. 사도 바울이 신학적 열정을 쏟아 경계한 리걸리즘(legalism)은 신학에서는 ‘율법주의’로 번역되지만 오늘날 법치주의 혹은 법 만능주의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실제로 한글 성경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는 ‘law’라고 표기된다. 바울은 ‘법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하나님 앞에 설 자격마저 규정하려는 태도’와 치열하게 싸웠다.

법이 갖는 본질적 한계뿐 아니라 법의 적용과 집행 과정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해서도 성경은 비판적이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약 2:6)는 야고보의 날카로운 지적은 당시 법정이 강자의 편을 들어 약자를 억압하는 기관이었음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의심은 철회해도 될까. 인류가 오랜 민주화 과정을 거쳐 상당히 신뢰할 만한 법체계와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이들 역시 편견을 가진 인간이며 권력을 손에 넣으면 인간의 죄성은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라는 성경적 통찰은 여전히 진리다.

최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평범한 의자와 대법관들의 등받이 높은 의자를 비교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 판결 내용과 절차에 대한 비판보다 권위적인 의자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더 심각할 수 있다. 비판에는 진지한 얼굴로 대응할 수 있지만 조롱에 근엄한 표정으로 맞선다면 희극성이 더해질 뿐이다. 법관들이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시대착오적이다. 국민이 얼마나 똑똑해졌고 권력 자체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으로 변했는지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현재 사법부의 곤경은 일부 법관의 편협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권위가 도전을 받는 시대 흐름에 적응 못 한 탓이기도 하다. 검은 법복과 높은 등받이 의자나 위압적인 법대(法臺)로 권위가 유지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가운을 입고 등받이 높은 의자에 앉은 법관의 모습은 기독교인에게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교회 강단 또한 크고 권위적인 의자와 화려한 복장을 버리고 좀 더 간소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행정적 절차에 불과한 교단의 회의에서 사회자들이 여전히 가운을 입고 있는 관행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형식적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낡은 장치들을 과감히 포기해야만 진정한 권위를 지킬 수 있다. 예수님은 그 모범을 이미 보여주셨다. 천군만마와 휘황찬란한 복장으로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다.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웃처럼 친근하게 오신 성육신에서 권위 회복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권위 없이는 건강한 사회가 불가능하며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 없이는 인권 보호와 경제성장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사도 바울 역시 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법 중심의 사고를 경계하지만 법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하며 바른 삶의 기초임을 부인하지 않았다.(롬 7:12) 법의 소중함을 안다면, 법치를 지켜내고자 한다면, 인간이 만든 법은 완전할 수 없다. 법을 집행하는 이들 역시 연약한 인간이라는 소박한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기억에 가장 선명히 남아있는 법원 관련 이미지는 2017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일 아침,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머리에 헤어롤 두 개를 달고 출근하던 모습이다. 이 헤어롤은 최소한의 단장을 하고 출근하기도 빠듯한 직장 여성의 삶을 상징하며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이 되시는 성육신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일 뿐이다. 법관들 역시 높은 법대에서 내려온 뒤 배달 앱으로 점심을 시키고 커피 한잔으로 고된 일을 달래며 살아간다. 평범한 동료 시민들의 정서와 판단을 존중하고 약한 이들의 눈물에 공감하며 주어진 권력을 겸손히 사용할 때 법관들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