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화책 ‘왕을 노린 음모’를 쓴 캐시 파텔을 연방수사국장에 발탁했다. 도널드란 이름의 왕이 파텔 마법사의 도움으로 악당 힐러리를 물리친다는 줄거리에서 왕은 누가 봐도 트럼프였다. 지난 1월 트럼프의 취임식 직후 일론 머스크는 SNS에 ‘왕의 귀환’이란 문구를 올렸고, 뉴욕시 혼잡통행료를 백지화했다고 자랑할 때 트럼프는 왕관을 쓴 자신의 합성사진과 함께 ‘국왕 폐하 만세!’란 문구를 직접 SNS에 적었다.
정말 왕이 되고 싶은 건지, 이미 됐다고 여기는지 지난 몇 달간 트럼프는 왕처럼 굴었다. 의회 입법 절차를 무시한 채 행정명령으로 모든 정책을 주물렀고, 대놓고 법원을 공격했다. 정책에 제동을 거는 재판부를 “썩었다”고 비난한 머스크, “판사가 대통령의 행정권에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는 밴스 부통령의 해괴한 논리에 그는 맞장구를 쳤다.
법원 결정에 아랑곳 않고 이민자 추방 등을 밀어붙이던 트럼프는 헌법마저 별것 아닌 양 취급했다. 헌법이 금한 3선 도전을 공공연히 말하고, 헌법에 명시된 출생 시민권을 없애려 들더니, 그제 NBC 인터뷰에선 헌법 수호 의지를 묻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해 미국 언론을 경악케 했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폐해를 보며 몽테스키외가 정립한 삼권분립은 미국에 뿌리 내려 250년을 이어왔는데, 입법부와 사법부를 무시하는 ‘도널드 왕’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증상인 삼권분립 형해화는 한국에도 나타났다. 헌법재판소는 군대를 동원해 의회 기능을 가로막고, 전직 대법관을 체포하려 해 사법권 독립을 침해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에 환호하던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이재명 후보 판결을 놓고 대법원장 탄핵을 운운하고 나섰다. 재판을 연기하라며 시한까지 정해 사법부에 최후통첩을 했다.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위배해 파면했더니, 이번엔 야당이 그것을 하고 있다. 왕처럼 구는 트럼프,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과 무소불위 거대 야당. 민주주의 위기는 결국 과도한 권력 집중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