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디킨스의 예수

입력 2025-05-10 00:33

한국 제작사 모팩스튜디오(대표 장성호 감독)가 만든 3D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The King of Kings)’가 미국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하청 국가였던 한국이 작심하고 만든 작품이 미국 시장에서 역대급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로 북미 박스오피스의 폭발적 수익 증가와 ‘K애니’에 강조점이 있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은 기독교의 핵심을 다룬다는 점이다. 영화는 예수의 삶을 말한다. 그 내용은 19세기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원작 ‘주 예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국 관객들도 “성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예수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려준다”는 평이 많다.

디킨스의 원작은 1849년 작가가 자신의 자녀를 위해 썼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그저 자녀들에게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했다고 한다. 1장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아빠는 너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꼭 알려주고 싶단다.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그분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

책은 신약성경 4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내용을 간추려 예수의 생애와 기독교의 탄생 배경을 담고 있다. 복음서를 넘나들면서 아이들에게 쉽게 예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의 곳곳엔 작가가 개입해 아이들에게 해설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를테면 탕자의 비유를 소개하면서 “잘못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잊은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며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든 반갑게 맞아주시며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뜻이란다” 하면서 말이다.

디킨스의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것은 ‘구세주(Saviour)’라는 말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이다. 구세주는 구원자라는 의미다. 죄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예수는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영원히 죽어 마땅할 인간을 구출했다. 구세주 정신은 디킨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혁명의 혼란 속에서 카턴이라는 인물이 찰스라는 사형수 대신 죽는 내용이다. 찰스를 구명하기 위해 주변인들은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 절망 중에 있을 때 카턴은 자기를 희생하고 찰스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소설적으로 승화했다.

디킨스의 소설에는 새롭게 변화된 인간형이 많이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가 그렇고 불쌍한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과 도둑소굴 속에서 고생하다가 신분이 바뀌며 구원을 받는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이자 대장장이의 아들 핍은 부잣집 소녀 에스텔러를 만나 사랑과 신분 상승의 욕망에 빠진다. 기대치 않은 은인의 도움으로 부와 지위를 얻고 런던에서 신사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어린 시절 순수했던 그는 속물적 인간으로 변해간다. 이후 은인의 정체를 알면서 혼란과 각성을 겪고 성장한다. 마치 탕자가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현대인에게 자기희생이나 헌신은 매우 낯선 가치가 된 지 오래다. 누군가 다가와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고 말하면 “나는 부탁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을 보자. 부탁하지 않은 호의와 헌신, 희생은 너무나 많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의 대가로 살아간다. 가장 대표적인 관계는 부모와 자식이다. 아무리 시절이 바뀌고 각박한 시대라고 하지만 부모는 여전히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오늘 우리 자신이 이렇게 번듯하게 존재하는 것은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 역시 누군가의 선의로 천국을 향할 것이다. 기독교는 그 선한 이가 예수라고 말한다. 세계 인구 3분의 1이 그를 믿는 것은 그저 상상이나 미혹에 빠져서가 아니다. 기독교 안에 뭔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2000년이나 이어지는 이유다. 이 예수가 지금 당신을 찾는다.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