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겨울,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프랑스와 벨기에 접경지역의 참호 속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 채 대치하는 중이었다. 매서운 추위, 진흙탕 속 참호, 그리고 이어지는 포성과 총성 속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독일군 참호에서 조용히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멜로디는 어둠을 가르며 전선 건너편까지 닿았다. 어느새 영국군 참호에서도 병사들이 노래로 화답했다. 양측 병사들 사이에 조심스러운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누군가 참호를 나와 중간지대로 걸어 나왔다. 그 뒤를 따라 병사들이 하나둘 나섰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서로 웃어주고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담배와 초콜릿을 주고받았고, 심지어 함께 축구공을 차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했다.
어떤 공식적인 명령이나 협정도 없었지만 인간다운 온기와 연민의 마음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법원의 조정실이 떠올랐다. 조정실도 법정이라는 전쟁터를 떠나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면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조정실에 처음 들어오는 당사자들은 서로를 철저히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쪽은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감정이 상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말이나 표정을 해도 금세 반발이 생긴다. 긴 테이블 양쪽에 마주 앉은 이들은 마치 참호 속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병사처럼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살핀다.
이런 분위기에서 조정을 시작할 때 나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몇 가지 원칙을 먼저 설명한다. “오늘은 정식 재판기일이 아니라 조정기일입니다. 조정에서 나눈 이야기는 나중에 법정에서 원용할 수 없습니다. 모두 조정, 즉 합의를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니까요.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오늘 새로 합의하면 이에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판의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세요.”
경계심으로 굳어 있던 얼굴들이 조금 풀리기 시작하면 다시 설명을 이어간다. “조정이 단순히 재판 중 거쳐 가는 절차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재판과 조정은 아주 다릅니다. 재판은 과거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과정입니다. 반면에 조정은 과거보다는 현재 여러분에게 닥친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집중합니다. 이제, 지금까지 서로 싸우던 것은 잠시 잊으시고, 두 분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협력해 보시지요.”
상대방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던 당사자들은 이제야 긴장을 풀고 대화를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처음에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갈등이 쉽게 풀리기도 한다. 밀린 월세를 분납해 갚기로 하고 임대차 관계를 유지하기로 하거나, 공유물분할 문제로 싸우던 공유자들이 적절한 가격에 상대방의 지분을 매매하기로 합의하기도 한다.
상속을 둘러싼 형제들 간의 갈등, 양육 문제로 감정이 틀어진 부부, 오해와 분노로 단절된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먼저 ‘총을 내려놓는 순간’이 필요하다. 참호 속에서 총구를 겨누던 병사들처럼 이들도 두렵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마주섰지만 상대방도 나와 같이 상처 입은 인간이라는 걸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면 비로소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대립과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처럼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용기를 내 상대방에게 겨눈 총구를 먼저 내려놓고,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겠습니다”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낼 때 전쟁 속에서도 총성은 멈출 것이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