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당연한 일들

입력 2025-05-07 00:33

그렇지. 아침 해가 뜨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광활한 우주 안 억겁의 지구 역사 속에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할 필연도 없고, 오늘처럼 내일이 나에게 다시 찾아올 거라는 약속도 없다. 그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도 아니며,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참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았다.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고, 골짜기에 졸졸 물이 흐르고, 소복이 쌓인 눈 아래 푸른 싹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내 의지가 아니어도 호흡을 하고 맥박이 뛴다는 기이한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여겨 왔다. 이 모든 일이 결코 약속된 것도, 보장된 것도 아닌데도.

만약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살이 한 줌도 없다면, ‘날이 흐리네, 비가 오려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다. 수일이 지나도 세상이 여전히 어두컴컴하고, 바람 한 점이 없고,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당연함의 공식이 깨지면서 겪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 따분하게 느끼기도 했던 일상을 그리워하리라. 익숙함은 생(生)의 신비를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걸까. 사방에서 일어나는 숱한 기적에 대해 점점 무뎌진다. 가까이, 오래 머문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매일 안부를 묻는 가족과 친구들, 출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수많은 우연의 합으로 오직 지금에만 머문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은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물결처럼 나의 통제 밖에 있다.

소중함이란 이런 사실을 깨달아야만 싹트는 감정이 아닐까. 익숙한 것들에게서 당연함을 지우고 이유 없이 일어난 삶의 기적을 촘촘히 꿰어 오늘을 채워본다. 나에게 내일이 주어질 약속이 없더라도, 다시 눈을 떠 환한 세상을 맞을 수 있기를, 사랑하는 이들을 마주 볼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도한다. 어제와 오늘이 그러하듯 절대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