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미국의 군사 퍼레이드

입력 2025-05-03 00:40

군사 퍼레이드는 전쟁에서 승리한 고대 로마제국의 장군이 뽐내던 ‘트리움푸스(triumphus·개선식)’가 원형이다. 이후 여러 제국과 독재국가의 심장부를 지나던 행렬은 권위와 힘의 상징이자, 대국민 선전 도구가 됐다. 북한은 국경일이면 김일성광장에 무인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심지어는 ‘핵탄두 모형’까지 끌고 나온다. ‘무장한 쇼’는 무력한 현실을 가리는 커튼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에서도 비슷한 이벤트가 추진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육군은 다음달 14일 트럼프 대통령의 79세 생일에 6600명의 병력과 150대의 군용차량, 50대의 헬기, 7개 군악대, 수천 명의 민간인까지 동원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계획 중이다. 미군 250주년 기념 행사에 맞춘다는 명분이지만, 트럼프 생일과 겹친 걸 우연이라 믿어야할까.

트럼프는 첫 임기 때도 프랑스 혁명 기념일(바스티유 데이) 열병식에 감명 받아 더 크고 웅장한 퍼레이드를 계획했다. 그러나 92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과 백악관 앞을 지나는 워싱턴몰 도로를 엉망으로 헤짚고 다닐 전차 때문에 백지화됐다. 이번에 탱크가 동원된다는 소식에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 DC 시장은 “도로 수리비 수천만 달러도 함께 보내라”며 한숨을 내쉰다.

이번 행사는 트럼프의 정치적 과시와 자아도취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축제처럼 흥겨울 순 있어도 민주주의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 최강 미군의 존재감을 재확인시키는 자리가 될지, 아니면 특정인을 향한 충성 이벤트로 기울지가 관전 포인트다.

로마 개선장군이 모는 전차엔 노예도 합승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 외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신의 경지에 오른 영광 속에서도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겸손하라는 의미다. 지금도 권력에 취한 이들이 새겨들을 만한 경고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헷갈려 보여선 곤란하지 않겠나.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