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저한테 심장을 선물해주신 가족들께 드리는 그림이에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나무와 햇살, 그리고 손 하트를 그렸어요.”
강윤호(9)군은 1일 손수 만든 카네이션과 손 하트를 그린 그림을 들고 기증인 유가족 ‘도너패밀리’ 앞에 섰다.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열 번 넘는 수술과 중환자실 입퇴원을 반복했던 강군은 지난해 1월의 마지막 날 심장 이식으로 새 생명을 선물받았다. TV에서만 보던 야구를 이제 직접 공을 던지며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강군은 “기증자 부모님께 건강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꼭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일 서울 서대문구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회의실에서 생명을 주고 떠난 이의 가족들과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마주했다. 처음으로 열린 ‘생명나눔, 다시 만난 봄’ 행사에서다. 아이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카네이션을 전했고 기증인 유가족은 손글씨 롤링페이퍼와 어린이날 선물로 답했다. 현행법상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신원은 공개할 수 없어 직접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생명을 나눴다는 특별한 인연으로 모인 이들 사이엔 눈물 섞인 진심이 오갔다.
1.37㎏ 미숙아로 태어나 인공심장에 의존하며 살던 이온유(5)군도 2023년 심장을 이식받으며 새 삶을 얻었다. 이군의 어머니 조혜성(29)씨는 이날 기증인 가족들을 만나 “온유에게는 기적이었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대신 받았기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기증자 가정에 하나님의 평안이 함께하길 매일 기도하며 온유도 그 마음 잊지 않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2023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심장을 이식받은 김주아(4)양의 아버지 김재겸(38)씨는 현장에서 감사 편지를 낭독했다.
“560일 만에 퇴원한 주아는 이제 숨도 잘 쉬고 밥도 잘 먹습니다. 네 가족이 한집에서 자는 일상이 회복됐고 잘 웃지 않던 주아의 오빠도 드디어 환하게 웃더라고요. 우리 부부는 감사의 뜻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도 마쳤습니다. 이 생명 최선을 다해 지켜내겠습니다.”
딸을 안고 편지를 읽던 김씨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고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주아 가족에게 카네이션을 받은 도너패밀리 이나라(32)씨도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생후 13개월 된 둘째 아들 정민군을 사고로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조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 정민이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떠났다는 걸 느꼈다”며 “오늘 남편과 오랜만에 정민이 사진을 꺼내보며 얘기할 수 있어 우리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강호(69) 도너패밀리 회장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생명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이 만남이 서로에게 평생의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매년 5월 가정의 달에 도너패밀리를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해 왔다. 오는 14일 뇌사 장기기증인과 유가족을 기리는 ‘로즈디데이(Rose D-day)’를 기념해 한 달간 온라인 사진전 ‘선한 이웃’을 진행한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