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사과를 국힘 지도부 아닌
당직자가 하는 희한한 풍경
이제라도 진정한 사과 있어야
대선 제대로 치를 수 있을 것
3일 선출될 대선 후보만큼은
'탄핵의 강' 확실히 건너야
당직자가 하는 희한한 풍경
이제라도 진정한 사과 있어야
대선 제대로 치를 수 있을 것
3일 선출될 대선 후보만큼은
'탄핵의 강' 확실히 건너야
요즘 본 것 중 가장 희한한 일은 지난주 국민의힘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여연)이 탄핵 사태에 대해 당을 대표해 사과한 일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파면된 이후 당 구성원 가운데 가장 사과다운 사과를 했다. 탄핵 사태 이후 당에서 진정어린 반성과 사과가 나오지 않으니 보다 못한 윤 원장이 기습 사과를 했을 것이다.
여연 원장은 핵심 지도부 회의 때 부르면 참석하고, 참석하지 말라면 못하는 직책이다. 자리도 취재진 카메라가 비추는 정면에 못 앉고 지도부 맞은편이나 옆쪽 구석에 앉는다. 선출직 지도부 멤버가 아닌 지도부 보좌역이다. 그런 당직자가 21대 대선 정강·정책 방송연설에서 당을 대표해 탄핵 사태와 대통령 파면을 사과한 것이다.
그 사과에 친윤석열계가 반발하면서 당이 술렁거렸다. 온 국민이 보는 방송에 나가 ‘감히’ 윤 전 대통령과 당의 잘못된 과거를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 술렁거리는 모습이 탄핵과 파면에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당의 민낯이다. 역사에 남을 큰 잘못을 저질러 파면당한 대통령이지만 여전히 그와는 절연하지 못하고 있고, 대놓고 비판을 해서도 안 되며, 사과한 것에 대해 윤 원장을 꾸짖어야 하는지 아닌지 헷갈리고 있는 그런 상태 말이다.
윤 원장 사과에 권성동 원내대표는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제가 국민께 실망과 혼란을 끼친 점을 사과했고 그걸 연설에 반영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넘어가자는 취지로 교통정리를 했다. 지도부가 사과했다고 얘기했지만 제대로 사과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권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당일 2분짜리 입장 발표에서 야당의 폭주를 막아내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면서 사과를 하긴 했다. ‘변명하지 말라’는 게 사과법의 제1법칙이지만 야당 탓을 빼놓지 않았다. 권 원내대표도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몇 마디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그런 의례적이고 남 탓에 급급한 언급을 국민들이 진솔한 사과로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다. 사과 이후 당에서 계속 계엄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발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당사자는 사과했다고 주장하는데, 피해자는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국민의힘이 진짜 제대로 사과하겠다면 윤 전 대통령 잘못이 무엇인지, 그걸 당이 왜 막지 못했는지 철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또 계엄 해제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것과 이후 50명 가까운 의원들의 ‘한남동 사저 사수’를 한 데 대한 반성도 뒤따라야 한다. 그런 반성 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그걸 의원총회와 당 중앙위원회 등 공식 의결 절차를 거쳐 추인을 한 뒤에 사과를 내놓아야 진정한 사과일 수 있다. 또 탄핵 사태가 빚어진 것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도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말 몇 마디로 사과하고, 친윤계가 지도부를 차지한 지금 상황에선 시늉만 사과로 비칠 뿐이다. 권 위원장이 1일 SK텔레콤 해킹 사태에 “이 정도로 큰 사고를 내고 부실하게 대응하는 기업이라면 당장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계엄과 대통령 파면은 큰일이 아니어서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가도 되는가.
국민의힘이 계엄과 탄핵에 반성과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대선을 온전히 치를 수 있을까. 그걸 주저하면서 탄핵 사태로 고통받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미 한쪽 발목에 탄핵 모래주머니를 찬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윤석열정부 2인자와 단일화를 통해 다른 발목에도 주머니를 차려고 한다. 대선을 ‘계엄 신임투표’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선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국민의힘이 이제라도 대선을 제대로 치러볼 생각이라면 3일 선출될 대선 후보라도 탄핵의 강을 온전히 건너야 한다. 후보가 주도해 당 차원의 진정어린 사과를 이끌어내고, 윤 전 대통령과도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 것을 계기로 친윤 핵심 인사들도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 극우 아스팔트 세력과 다시는 손 잡지 않겠다고 밝혀야 한다. 최소한 그렇게 해야 대선에서 겨우 싸워볼 수 있다. 그래야 중도층한테 표를 달라고 할 명분이 생긴다. 그게 보수 재건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당과 후보가 국민 마음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지 말기 바란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