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필수인력인데… ‘정부 돌봄’ 못 받는 돌봄노동자들

입력 2025-05-01 02:24
게티이미지

가정에 방문해 일하는 재가 요양보호사 A씨(72)는 매일 두 가정에서 장기요양 어르신을 돌본다. 근무시간은 4시간씩이지만 두 번째 집으로 이동할 때 걸리는 1시간은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르신이 요양시설에 들어가면 갑자기 수입이 끊기는 상황도 늘 걱정이다. 시설을 옮기면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이용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A씨는 30일 “경력이 20년 넘었는데 ‘아줌마’라는 호칭을 벗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며 “성희롱 같은 인권침해를 당해도 센터는 이용자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참으라’는 말로 넘기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는 “열악한 근무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니 금방 그만두는 요양보호사가 많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는 고령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인력이다. 누구도 나이듦을 피할 수 없고, 언젠가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보고한 ‘노인돌봄인력 수요·공급 전망’을 보면 20년 뒤에는 99만명의 요양보호사가 추가로 필요하다. 2023년 기준 활동하는 요양보호사는 61만명, 평균 나이는 61세 수준이다. 중고령 여성들이 요양보호사에 뛰어들어 ‘돌봄 최전선’을 지키는 형국이다. 현장에선 ‘노노(老老) 케어’가 일상이 됐다고 평가한다.


6년차 요양보호사인 B씨(60)도 50대 중반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민간시설을 거쳐 공립요양원에 취업한 그는 4개 근무조로 일하며 어르신들을 24시간 돌본다. B씨는 “민간에 있을 때는 혼자 야간근무를 하며 30명의 기저귀를 갈기도 했다”며 “공간이 더 쾌적하고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수당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B씨는 돌봄노동이 ‘감정노동’이라고 강조했다. 힘을 많이 쓰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어르신과의 감정 교류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일이 힘들고 바빠서 눈길 한번 주지 못하면 어르신과의 관계와 시설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저도 언젠가 돌봄 시설에 들어갈 텐데 그때는 국공립 시설이 늘어나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공립 시설이 돌봄 기관의 ‘표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지만 현재 2만여개 요양시설 중 국공립 비율은 1%에 불과하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민간에만 노인돌봄 시장을 맡기는 게 아니라 정부가 투자하고 시스템을 만들어갈 시점이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 역시 세분화·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야당은 돌봄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돌봄기본법’을 추진하고 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요양보호사나 아이돌보미 등 돌봄노동자는 직종별로 각기 다른 법을 적용받아 처우 개선이 더욱 어려운데, 이를 포괄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드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