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 아이는 이 말에 두 번 운다

입력 2025-05-02 00:00 수정 2025-05-02 00:00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아이들이 아무 상처 없이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다. 세상에 나쁜 부모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얘기할라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 있다. “부모는 모두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가장 위대하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이런 말들은 상처받고, 부모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는 좋은 부모다. 자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극소수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도 있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

저자는 ‘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는 말은 사회적 ‘미신’일뿐이라고 말한다. 사실이 아닌데도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미신은 진실을 가린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면서 “심지어 스스로를 부정하며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신을 책망하기에 이른다”고 말한다. 다소 도발적인 주제의 책이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자녀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조언으로 읽힐 수 있다.

가짜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유명한 책 ‘사랑의 기술’에서 힌트를 얻는다. 프롬은 사랑에 대해 “창조, 학습, 실천해야 하는 일종의 예술”이라며 “사랑은 보살핌, 책임, 존중, 이해 등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정의한다. 대다수의 부모는 보살피고 책임지기까지만 할 뿐 자식을 존중하고 이해하지 않는다. 이해와 존중이 없이 보살핌과 책임만 강조하는 부모는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학비를 대주는 것이 사랑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들은 “내가 너를 이만큼 키워줬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말을 달고 산다. 심지어 ‘그동안 너를 보살펴줬으니 너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까지 한다. 저자는 “존중과 이해가 결여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더라도 부모 자식의 관계는 사람과 사물의 관계에 더 가깝다”며 “보살핌의 대상인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 소유하고 통제하며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물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랑’이라면 사랑을 받는 쪽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어느 세대나 “자녀는 부모에게 빚진 존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부모가 생명을 주고 키워줬으니 부모에게 빚지고 태어나긴 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부모는 아무리 ‘빚’을 갚아도 만족을 시킬 수 없다. 자식이 노력해도 부모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자식은 그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불효막심한 ‘놈’일 뿐이다. 애초 부모와 자식 관계를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로 설정한다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부모가 자식이 ‘우량 채무자’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진실한 사랑의 부재를 증명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식 입장에서는 자신이 빚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면 자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상처를 인정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주춤한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이 부족해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고 믿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면 자기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감을 얻으려고 괜히 힘 빼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애도하고 치유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부모에게도 충고한다. 부모들은 자녀가 독립적이고, 성숙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좋은 부모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게다가 그 평가는 반드시 자녀의 복종을 통해 달성돼야 한다. 부모들은 이런 헛된 희망을 버려야 한다. 저자는 “자녀의 무조건적인 인정을 부모로서의 가치를 유일한 원천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면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녀로부터) 반박당하는 연습을 하고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권한다.

책에는 ‘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미신에 가려진 정서적 폭력을 폭로한다. 가령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될 수 없다’는 편견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서러운 사람에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운명이라며 자괴감까지 안기는” 2차 가해라고 비판한다.

대만의 여성 작가인 저자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보다는 집 밖에 있을 때가 더 편한” 아이였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이 겪은 상처들을 솔직하게 드러내 놓는다. 그는 “어려서부터 줄곧 부모님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부모님의 고통이 어떻게 나의 고통을 초래했는지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 임무는 영원히 실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이러한 교훈은 “내가 왜 아쉬웠고 실망했는지를 이해하고, 가장 솔직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소중히 여기면서 터득한 것”이었다.

⊙ 세·줄·평 ★ ★ ★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사랑은 평등과 존중에 기초한다
·진실을 가리는 사회적 미신을 걷어차자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