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에 대한 돌파구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선택하고 있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느려진 것에 대응해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의 중간 단계 모델인 EREV로 활로 개척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최근 중국에서 열린 상하이모터쇼에서 폭스바겐 최초의 EREV인 ID. 에라(Era)를 공개했다. 중국 현지 법인이 개발을 주도한 콘셉트 모델로 1회 충전과 주유만으로 1000㎞ 이상을 주행할 수 있다. 폭스바겐은 중국에서 EREV 신차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EREV는 하이브리드차와 달리 대용량 배터리가 동력 생산을 맡는다. 하이브리드차는 엔진이 주 동력원, 배터리가 부 동력원이라면 EREV는 엔진이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종의 발전기 역할만 한다. EREV는 하이브리드차보다 주행거리를 배 이상 늘릴 수 있고, 전기차보다 제작 비용이 적다는 게 강점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 리서치 인텔렉트는 글로벌 EREV 시장이 약 20%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며 2031년 5180억 달러(747조8884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EREV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건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EREV 판매량은 131만대로 2023년 65만대 대비 배 이상 증가했다. BYD(비야디)는 고급 브랜드인 ‘양왕’의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U8L을 공개했다. 리오토는 대형 SUV ‘L7’을 출시해 지난해 중국에서 13만4000여대를 판매했다. 화웨이와 체리자동차의 합작법인 럭시드는 ‘EREV R7’을 내놨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적극적이다. 일본에선 마쓰다가 EREV 출시를 선언했다. 미국에서는 스텔란티스 산하 브랜드 램이 하반기 EREV 픽업트럭 램차저 1500을 출시할 예정이다. 포드도 대형 SUV와 트럭 부문에서 전기차 대신 EREV를 도입한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도 EREV 모델을 개발 중이다. 현대차는 내년 말 북미와 중국에서 EREV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송호성 기아 사장이 최근 “EV만으로 시장 대응에 한계가 있을 경우 EREV로 보완할 수 있도록 병행 검토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캐즘 속에 과도기적 모델로 의미가 있다”며 “연비도 뛰어나고 충전 문제도 없기 때문에 상당히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